최근 5주 연속 베스트셀러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해냄). 국내에 처음 번역된 1998년부터 10년간 이 책이 올린 판매고는 10만 부 가량이다. 그런데 최근 한 달 반 새 5만 부가 팔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출판사조차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기간에 5년치 판매고를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11월 개봉한 동명의 영화와 공동으로 홍보전선을 구축한 덕이 크다. 영화를 본 관객은 모두 64만7000명. ‘대박’은 아니지만, 해냄출판사 이진숙 편집장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조제 사라마구의 원작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이끌어내기엔 충분한 숫자였다”고 말했다.
◆영화와 책, 동반 마케팅으로 윈윈=영화와 책의 이 같은 ‘크로스오버’는 올해도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을 눈치다. 2006년 불었던 ‘오만과 편견’ 열풍 이후 이 둘의 동거는 문화동네에서 공공연한 현상이 됐다. ‘오만과 편견’은 품질 높은 문화콘텐트끼리 거둘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잘 보여줬다. 영화 흥행과 더불어 세 출판사의 책이 줄줄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중 민음사의 『오만과 편견』은 영화 상영 중 기존에 판매된 7만 부의 네 배를 넘는 30만 부가 추가로 팔렸다.
지난 해 개봉해 전국 관객 160만 명이 본 우위썬 감독의 ‘적벽대전’. 『삼국지』를 소재로 한 이 영화 개봉으로 이문열 평역 『삼국지』는 예년보다 12만 부가 더 팔렸다. [쇼박스 제공]
시너지 효과는 이렇게 발생한다. 영화는 길게는 개봉 한 달 전부터 홍보를 시작하므로 노출기간이 길다. TV·잡지·인터넷 등 여러 매체를 통하므로 규모도 크다. 마케팅 비용도 다른 문화 분야보다 많다. 영화화되는 콘텐트는 그래도 기본은 될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기대도 한 몫 한다. 책은 여기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격이다. 한편 영화는 ‘원작이 유명하다(혹은 있다)’는 점을 홍보 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 원작의 존재는 고급 관객들을 유인하는 데도 쓸모 있다. 책을 소비하는 층과 영화를 소비하는 층에 대해 서로 별도의 홍보비를 지출하지 않으면서 광고가 되니, 누이·매부 다 좋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조제 사라마구의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눈 먼 자들의 도시’. [CM엔터테인먼트 제공]
원작이 유명하지 않아도 영화로선 섭섭할 게 없다. 숨어 있는 관객층을 개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트와일라잇’ 홍보사인 ‘오락실’ 이보라 대표는 “예전엔 영화 주 타깃층이 아닌 쪽까지 껴안기 위해 별도의 마케팅비를 지출했지만, 요즘은 주 타깃층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잠재 관객 층에 대해서는 출판사와의 공동 프로모션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북폴리오는 영화 이미지를 담은 달력을 제작해 특별판에 영화예매할인권과 함께 끼워팔았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는 함께 프로모션을 한 한·중 합작 ‘삼국지-용의 부활’은 흥행에 재미를 못 봤다. 대신 곧이어 개봉한 ‘적벽대전’이 전국 관객 160만 명을 동원하면서 책은 수혜를 톡톡히 입었다. 지난 해만 42만 부가 팔렸다. 민음사 이미현 홍보부장은 “해마다 평균 30만 부 정도 나가던 『삼국지』가 지난해 영화 덕으로 12만 부가 더 나갔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원작을 영화가 견인한 대표적인 사례인 ‘트와일라잇’. [판시네마 제공]
◆영화야, 올해도 부탁해=최근 F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2년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뿔’과 ‘노블마인’ 두 군데서 동시에 나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11일 열리는 제66회 골든 글로브상 작품상과 남우주연상(브래드 피트)의 유력 후보이기 때문이다. 채영희 노블마인 대표는 “영화가 기대작으로 꼽힌다는 점을 알고 출간을 결정했다. 다른 책과 차별화하기 위해 그래픽 노블을 원작소설과 함께 실었다. 또다른 골든글로브 작품상 후보인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동명 원작도 이달 말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