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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일렁이는 오로라 두근두근 북극의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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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뒤 어딘가에서 한 줄기 빛이 치고 올라왔다. 광선은 이내 하늘을 가로질러 반대편 숲 뒤로 길게 이어졌다. 북극의 밤하늘은 초록 광선으로 양분됐다. 오로라였다.[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지구 반대편에 있는 페루에 가면 새 수천 마리가 떼로 죽는 해안이 있단다.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읽은 얘기다.

‘그들은 참으로 먼 곳으로 날아가기 전에 이곳에 와 그들의 뼈를 버리는 것이다. …그들의 피가 차가워지기 시작하여 이제 겨우 그 바다를 건너기에 적당할 만큼밖에 여력이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이곳의 모래는 부드럽고 따뜻하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엔 정말 새들이 날아와 죽는 해안이 있다. 그러나 그 낭만적이고 경이로워 보이는 사건은, 초자연적 현상이나 죽음을 무릅쓰는 집단행동 따위와 하등 관계가 없다. 그건 엘니뇨 현상 때문이다. 바다 수온이 높아져 플랑크톤이 죽고 뒤이어 연안 멸치떼마저 사라지자 먹이를 찾지 못한 새들이 결국 해안에 추락하는 것이다. 그뿐이다. 세상은 어떻게든 해석되고 설명된다. 지구에서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로라도 마찬가지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된 플리스마라는 전기 입자가 대기 중에서 공기 입자와 충돌해 나타나는 기상현상이다. 그래, 그뿐이다. 그러나 그 원리를 규명해 놓고도 인간은 오로라 아래서 한없이 약해진다. 신성한 존재라도 조우한 양 깍듯이 받들고 머리를 조아린다. 여전히 인간은 오로라 앞에 숱한 전설과 신화를 바친다.

캐나다 북쪽 마을을 다녀왔다. 북위 62도, 1월 평균기온 영하 28.8도의 캐나다 최북단 노스웨스트주의 주도(州都) 옐로나이프라는 곳이다. 그 먼 데까지 찾아간 건 오로지 오로라 때문이었다. 옐로나이프는 오로라 투어의 세계적 명소다. 옐로나이프가 속해 있는 노스웨스트주는 한반도보다 6배나 크지만 인구는 4만여 명에 그친다. 지구촌 오지인 셈이다. 그곳에 1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 그리고 그들은 매운 북극 바람 맞아가며 얼어붙은 설원 위에서 기꺼이 밤을 보낸다. 이곳은 겨울마다 세계 최고의 에코투어 아지트가 된다.

칠흑 같은 북극의 밤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는 오로라를 올려다 보다 밤하늘 별을 세던 어릴 적이 떠올랐다. 그땐, 반짝이던 별만큼 꿈도 많았다. 잠시나마 그 시절로 이끌어준 오로라가 고마웠다. 그래, 이만으로도 족하다. 어리석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꿈꿀 수만 있어도 우리, 행복하므로.

글=손민호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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