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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1. 88올림픽 호돌이 서울고 1학년 윤태웅 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뭇사람들의 관심을 끌던 인물들,그리고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주역들.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우리 기억 속에 잊혀져 가는,그러나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 숨겨진 사연과 함께 '그때'이후의 삶을 조명해본다.

88년 9월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이 벌어지고 있는 잠실벌.TV를 시청하고 있는 전세계인의 눈길은 깊은 정적 속에 푸른 잔디밭을 가로질러 굴렁쇠를 굴리는 일곱살짜리 소년 尹泰雄(잠원초등학교1)군에게 집중됐다.

“그저 평범한 고등학교(서울고)1학년생일 뿐이에요.평범한 학생으로 바라보던 친구들도 어떻게 알아냈는지'88호돌이'였던 걸 알고는 저를'부잣집 아들'이라든가'굉장한 연예인'처럼 대하곤 해요.” 尹군은 지금 자신이 올림픽과 '호돌이의 굴렁쇠'만큼 대단한 학생이 아니라고 강조한다.바덴바덴에서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된 81년 9월30일 태어난 2천명중 명예의 호돌이로 선발된 尹군은 이제 듬직한 고등학생으로 자라났다.

“호돌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몰랐어요.처음에는 굴렁쇠가 뭔지,어떻게 굴리는 것인지,심지어는 올림픽이 뭔지도 잘 몰랐거든요.” 서울올림픽 개막식 직후 공연은 세계 각국의 온갖 가면들이 난장을 벌인'혼돈'으로 시작,태권도 시범단의 격파술에 의해 혼돈을 깨뜨리는'벽을 넘어서'로 이어졌다.벽을 넘어 창조된 동양의 여백과 침묵 속에 尹군의'정적'이 펼쳐졌다.우주의 순환,지구촌의 화합,오륜을 상징하는 굴렁쇠와 함께 한 1분여의 시간은 올림픽과 서울을 기억하는 세계인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개막식 공연 가운데 가장 극찬을 받은'정적'을 연출한 李御寧 이화여대 교수는 尹군을'하늘이 서울올림픽에 내려준 선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尹군은 올림픽 이후 바빠졌다.올림픽 직후부터'굴렁쇠 굴리는 사진'을 보내달라는 해외동포들의 요청이 쇄도했고,기업체의 광고모델 요청까지 잇따랐다.하지만 尹군의 부모는 尹군이 필요 이상으로 유명세를 치르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웬만한 요청은 뿌리쳤다.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굴렁쇠를 굴렸지만 어른들은 저의 작은 손이 지구를 굴린 것이라고 하셨어요.” 94년 서울 정도(定都)6백년을 기념해'자랑스런 서울시민상'을 수상하기도 한 尹군은 과학 공부가 어렵다고 한다.다른 과목들도 열심히 하지만 생각만큼 성적이 좋지 않다고 겸손해 한다.

예절 바르기로 동네에 소문나 있는 尹군은 신반포중 2학년 때 학교 매점 일을 도와주고 학비를 보조받는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기도 했다.은행원인 아버지의 몸에 밴 근검 절약 정신을 그대로 본받은 결과다.장학금에 평소 용돈을 보태 尹군은 자전거를 샀다.

아직 여자 친구가 없다는 尹군은 서태지와 아이들.시나위.크래쉬.윤도현밴드등을 좋아하는 요즘 젊은 아이들과 그다지 다를게 없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꿋꿋하게 자라나고 있다. 고규홍 기자

<사진설명>

88호돌이 尹泰雄군이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굴렁쇠를 굴리며 올림픽주경기장을 가로지르는 모습과 고교생이 된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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