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년>6. 그리운 옛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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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돌아보면 누구나 늘 배고팠고 너나없이 헐벗었던 시절.하지만 추억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그 누추함조차 아름다운 모습으로 굴절돼 비친다.

최근들어 중년 남녀 사이에 소리소문없이 번지는'옛 친구 찾기'는 바로 그런 추억과 향수의 바람.30년을 잊고 지낸 국민학교 동창들을 불러모으고,헤어진 첫사랑을 수소문하는 극성스런(?) 중년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중년이란 나이가 원래 현실에만 코를 박고 살아오던 일상에서 벗어나 과거를 보듬게 되는 나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중년들의 추억찾기는 좀 유난스런 데가 있다.명예퇴직이며 40대 과로사등 최근의 사는 모습이 요지경속 같다 보니'사람들이 모든게 투명하고 익숙했던 과거로 퇴행하려는 심리를 보인다'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들릴 정도다.

또 한쪽에선'이제 살만큼 살게 된 중년들이 현재의 풍요로움을 재확인하는 방법중 하나로 옛 친구들을 떠올리게 됐다'는 설명도 있다.남루했던 유년시절을 공유했던 고향 친구들을 마주하면서 '내가 이만큼 이뤄왔구나'하는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옛 친구와의 만남은 중년들에게 세월의 각질을 뛰어넘어 어린시절 맨살로 뒹굴던 즐거움을 제공한다.40여년간 연락을 끊고 살다가 최근들어 충주 삼원국민학교 6회 졸업생 모임을 시작한 李관용(56.인천시계양구작전동)씨.

“머리가 허연 사람들이'얘''쟤'하고 서로 반말을 합니다.나이만 들었다뿐 만나면 국민학교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거지요.” 수도권 일대에 사는 동창이 스무명 남짓.이들은 석달에 한번꼴로 만남을 가질뿐만 아니라 충주에 사는 동창들의 경조사까지 일일이 챙겨주는 정을 과시한다.여자 동창들의 경우 그럴 때마다 남편들이 운전사노릇을 자청하는 것도 재미있다.

결혼과 함께 멀어졌던 국교 동창 10여명을 일일이 연락,두달에 한번씩 다시 만난다는 金영자(43.서울송파구방이동)씨도 옛친구 예찬론을 펼친다.

“이것 저것 서로를 비교해보게 되는 대학 동창.고등학교 동창하고는 또 틀려요.소꿉친구들이기도 한 국민학교 동창들을 만나면'나는 요즘들어 음식을 자꾸 흘리며 먹는다''너도 그러니? 나는 이가 흔들려 못살겠다'며 나이들어가는 흉허물까지 남김없이 드러내보일 수 있더라고요.” 헤어져 살아온 시간들이 무색할 만큼 살갑게 지내고 있다는게 金씨의 말이다.

이처럼 옛 친구를 찾아나서는 중년들의 열성은 관련 방송프로그램.통신코너로까지 이어져 새로운 만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탄생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1월부터 헤어진 친구.은사.첫사랑등을 찾아주는 방송코너를 기획.제작중인 KBS-1TV'아침마당'金성응 부장은“지난 한햇동안만 수천명의 신청자들이 몰렸고 그중 대다수가 40대이상”이라면서“아무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TV를 쳐다보며 기뻐하는걸 보면서 중년 세대의'뿌리찾기'의 거대한 공감대를 느낀다”고 말한다.한편 문화평론가 李성욱씨는“중년들의 옛친구찾기 붐은 최근 복고와 향수의 이미지를 과잉 상품화하는 드라마.영화.패션등 문화산업 경향과도 맞물려 있다”면서 자칫 실속없는 가벼운 유행으로 흐르게 될 위험성도 지적했다. 신예리 기자

<사진설명>

삼원국민학교 철부지들이 40여년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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