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 금호생명 사옥 먼저 매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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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금호생명 사옥을 처분했다.

금호는 한때 그룹 본사 사옥으로도 썼던 서울 신문로 금호생명 사옥을 부동산 투자회사인 제이알자산관리에 2400억원에 팔았다고 6일 공시를 통해 밝혔다. 금호생명 소유의 이 빌딩은 2000년 완공된 지상 18층, 연면적 5만4363㎡(1만6500평)짜리 건물이다.

금호는 지난해 7월 금호생명 매각 등 유동성 대책을 발표했다.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 등 잇따른 대형 인수합병(M&A)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외부 지적이 끊이지 않자 마련한 자구책이었다. 이 대책에서 금호생명을 1조원 이상 받고 매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금호생명 매각을 위한 입찰을 마감한 결과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입찰에 참여한 5~6개 사가 부른 최고 가격은 금호가 원하는 가격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지난해 말 세계적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시중에 대형 건물이 매물로 쏟아진 것도 큰 이유였다. 입찰자들이 가능하면 값을 싸게 불러 사려고 했기 때문이다.

금호의 장성지 홍보부문 전무는 “입찰자들과 건물 가격 산정을 두고 견해 차이가 컸다”며 “이번 매각으로 부동산 가치 산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돼 금호생명 매각 작업이 보다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건물이 팔린 것만으로 금호생명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시장 환경이 특별히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호는 그래도 매각이 안 되면 기존의 공개 매각 추진을 중단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금호의 한 고위 임원은 5일 기자와 만나 “1월 말까지 적절한 가격을 제시하는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현행 방식의 공개 매각은 그만둘 방침”이라며 “대신 유력한 인수 후보자와 비공개 협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금호의 이 같은 매각 방식 변화 움직임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공개 매각으로 인해 일선 보험 영업 조직의 동요가 심하기 때문이다. 장 전무는 “생명보험은 영업이 생명인데 공개적으로 매각을 추진하면서 영업직의 사기가 떨어지는 등 문제가 컸다”고 말했다. 이번 빌딩 매각 대금은 금호생명으로 들어간다. 이 돈이 그룹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당장 쓰여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승녕·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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