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환율변동과 경기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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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발표한 경제성장률과 체감경기간에 큰 차이를 느끼고 있다.정부가 발표한 실질경제 성장률은 95년 8.9%에 이어 96년에도 7.1%였다.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지난해에 경기가 훨씬 더 급속히 악화됐다고 믿고 있다.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이런 차이를 재고(在庫)투자로 설명하고 있다.팔다가 안 팔린 물건들은 재고로 쌓이게 되는데 통계상으론 이것이 재고투자로 취급되고 실질경제 성장률 계산에 포함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물론 이것도 이유중 하나다.

원貨절하 성장률 낮춰 그렇지만 이러한 차이를 느끼게 하는 보다 큰 이유는 원화의 평가절하가 사실상 소득의 해외유출(流出)을 초래하기 때문이다.우리 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고 수출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이 상황에서 원화의 평가절하는 소득의 해외 유출을,그리고 평가절상은 소득의 국내 유입(流入)을 가져온다.

96년중 원화는 연평균 4.2% 평가절하됐고 수입액은 1천4백35억달러를 기록했다.경제 전체적으로는 원화 평가절하의 결과로 4조8천억원에 달하는 수입결제액을 추가 부담한 것으로 계산되고 이는 96년 경제성장률을 대략 1.4%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반면 95년에는 원화가 연평균 4.2% 평가절상됐고 이는 95년 경제성장률을 사실상 1.4%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현상에서 우리는 몇가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다.먼저 수출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태에서 경기상승시 원화가치가 상승하고 경기하강시 원화가치가 하락할 경우 국내 실질 경기변동의 폭은 실질경제 성장률의 차이보다 더욱 확대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경기상승시에 이에 맞춰 기업을 과도하게 확장할 경우

경기후퇴시에 그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특히 우리나라 기업들과 같이

재무구조가 취약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95년말 현재 30대 기업의 평균

자기자본 비율이 22%,그리고 5대 기업의 경우 24%정도로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재무구조는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

현재 어려움을 겪는 진로그룹은 자기자본 비율이 4%이며 10% 미만인 기업도

몇개 있다.재무구조가 취약한 대기업들은 경기상승시 우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만약 무리하게 기업을 확장한다면 그만큼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국제간 자본이동을 감안할 때 지금과 같은 경기상승과 원화의

평가절상,그리고 경기하락과 원화의 평가절하와 같은 추세는 우리나라가

선진경제에 진입할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그렇다면 환율변동이

경기변동을 그만큼 심화시킬 것이며 이에 대비한 경제안정 정책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환율안정은 교역재의 가격안정 뿐만 아니라 국내 경기변동을

완화시킨다.그런데 이러한 환율안정은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안정이

아니라 국제수지를 개선함으로써 달성해야 할 것이다.국제수지 개선은 결국

우리가 과소비를 줄여 수입을 억제하고 우리 경제의 생산성을 높여 수출을

늘림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올들어 원화는 지난해 말에 비해 이미 6%가량 평가절하됐다.이와 같이

원화가 평가절하된 이유는 타국통화에 대한 달러의 일반적 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의 경상수지가 별로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화의 약세가 계속되면 원화의 평가절하에 따른 소득의 해외유출로

올해의 경기도 실질경제 성장률보다 낮을 것이다.

안정정책 지속 추구해야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안정 정책 추구는

그 고통이 매우 클 것이다.그렇지만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을 도모하고 거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금융구조.산업구조.정부구조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또한 우리의

부동산가격등을 볼 때 아직도 우리경제에 거품이 큰 것이

사실이다.우리경제의 구조조정과 거품 제거가 이뤄져야 선진경제에 진입할

것이며 이를 위한 경제안정 정책의 추구는 절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이러한 정책이 열매를 맺어 국제수지가

개선되고 우리경제의 생산성이 높아질 때 경기는 실질경제 성장률보다 더

빠른 속도로 회복된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이다.

김인준 <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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