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代案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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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누군가가 말하기를 북녘은 미쳤고 남녘은 썩었다고 했다.남녘이 썩은 정도는 한보청문회를 들어보면 금방 확인된다.그러나 썩었다는 것은 우리 어른들이 썩은 것이지 자라고 있는 청소년들이 썩었을리는 없다.비록 어른들은 썩었더라도 청소년들이 바르게 자라준다면 그들의 시대에 가서 이 사회는 소망이 있게 된다.

*** 병든 청소년 많은 사회

그러나 안타깝게도 청소년들은 썩는 대신 병이 들었다.병이 든 증거로 지난 한해만도 가출한 고교생이 7만여명에 이르고 비행(非行)으로 퇴학당한 중.고생이 5만3천6백명에 이른다는 소식이다.

이런 실정에 대처해 교육부는 대안학교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대안학교란 기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별도로 세워지는 학교를 일컫는다.장관이 직접 나서고 관계 공무원들이 앞장서 대안학교 설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참으로 고마운 일이다.이러니 저러니 해도 문민정부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지난날의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야 그런 발상이나마 있었겠는가. 내가 속한 두레마을 공동체에서도 경기도와 강원도에 대안학교를 세우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두레자연학교'란 이름으로 세워질 대안학교의 설립취지는 간단하다.교사중심이 아닌 학생중심의 학교,성적 올리기가 아닌 사람 만들기 학교,대학진학이 아닌 행복한 사람되기를 첫째로 삼는 학교를 세우자는 취지다.

학급당 20명을 정원으로 하고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적응하기 어려워 학교생활을 그만두게 된 학생들을 받아들인다.교사들과 학생들이 함께 살고,함께 놀고,함께 공부한다.공부만 중요시하는 학교가 아니라 놀이와 노동을 함께 중요시한다.하루 일과중에는 두서너시간의 노동이 있다.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거나 꽃을 기르거나 돼지.닭을 친다.노동은 망가진 감성지수(EQ)를 회복시켜 주는데 특효약이기에 어떤 학과목보다 중요하다.청소년 시기에 체득된 노동정신은 평생을 건실한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는 기초가 된다.한낮 더운 때는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놀이도 하고 축구도 하고 기마전도 한다.공부 잘하는 학생이 목표가 아니라 잘 놀고 잘 웃고 일 잘 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줄 아는 학생을 목표로 하기에 더불어 사는 삶 자체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공부는 언제 하는가. 아침.저녁 시원할 때 공부한다.물론 학생들이 좋아할 때는 온종일 공부만 하는 날도 있다.그렇게 공부시켜서야 대학들어가는데 엄두나 내겠느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있다.

“굳이 대학을 가야만 하는가.대학 안 가도 행복하게 살 줄만 알게 되면 될 것이 아닌가.교육의 목표가 대학졸업자를 기르는 것이 아니다.스스로 행복하게 살 줄 알고 자기가 누리는 행복을 이웃에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큰 목표가 아니겠는가.”

*** 공부.노동.놀이를 함께

나는 아들에게 일러주곤 한다.

“신경쇠약에 걸린 대학교수가 되는 것보다 건강한 농사꾼이 되어라.불면증 걸린 박사가 되기보다 싱싱한 노동자가 되어라.거짓말하는 국회의원이 되기보다 정직한 이장이 되어라.” 대안학교 운동은 그런 사람을 기르자는 교육운동이다.그래서'사람살리기 운동'이요'공동체건설 운동'이다.지금 우리 정치가 엉망이라고들 한다.경제가 망가져가고 있다고들 한다.그렇다고 엉망인 정치,망가진 경제로 21세기를 맞을 순 없지 않겠는가.대안(代案.Alternative)을 찾아야 한다.정치에 대안을 찾고 경제에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 뜻에서 대안학교는 뜻을 지닌다.자그마한 학교로 시작되겠지만 겨레 살리는 일에 한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운동이라 여겨진다.

김진홍 <목사.두레마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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