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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 웃게 하는 ‘제2 허재’ 강병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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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2의 허재’가 진짜 허재를 살리고 있다.

4일 KCC와 SK의 경기. 종료 6분여를 남기고 KCC가 78-58로 앞서 승부가 결정된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갑자기 힘을 낸 SK 선수들은 KCC 선수들의 공을 다 빼앗아 갔다. 그러면서 던지는 슛은 족족 들어갔다. 3분 동안 점수는 SK 16점에 KCC는 0점. 20점이던 점수 차가 4점으로 줄었다. KCC는 태산 같은 파도 앞의 작은 배였다.

이때 KCC 강병현(24)이 나타났다. 상대 골밑을 파 슛을 성공시키고 보너스 자유투까지 얻어내면서 성난 파도를 누그러뜨렸다. 잘 생긴 강병현을 쫓아 다니는 오빠부대 소녀들만큼이나 KCC 허재 감독의 입이 벌어졌다.

8연패하는 동안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한숨짓던 허재 감독이 요즘은 조금씩 미소를 보이고 있다.

KCC는 최근 네 경기에서 3승1패다. 서장훈·하승진을 보유한 키다리 팀에서 리그 최단신팀이 된 허재팀은 서장훈과 트레이드로 데려온 신인 강병현 덕에 연착륙하는 인상이다.

강병현은 KCC의 새로운 팀 컬러에 잘 맞는다. 단신 팀은 찰거머리 수비로 압박하고 속공으로 공격해야 하는데 강병현이 딱 그 스타일이다.

가드 치고는 큰 1m93㎝의 키에 스탠딩 덩크를 하는 탄력과 스피드를 지녀 상대 슈터를 틀어막는 수비력이 좋다.

게다가 속공 구사도 탁월하다. 여유를 찾은 허 감독은 “하승진이 돌아오면 해볼 만하다”고 다시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제2의 허재라는 소리를 들은 선수는 부지기수고, 강병현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강병현은 부담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대학 시절 허 감독께서 언론사의 요청에 유망주로 찍어줬는데 ‘제2의 허재’로 보도됐다”면서 “어릴 때부터 나의 우상이었지만 제2의 허재라는 말에 부담이 많았다”고 실토했다. 강병현은 KCC로 오기 전 전자랜드에서 야투 성공률이 39.6%, 자유투 성공률은 56.3%에 불과했다. 대학 시절 국가대표였던 강병현의 기록으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이에 대해 강병현은 “전자랜드에선 같은 포지션에 경쟁 선수들이 많아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밀릴까 봐 걱정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부담감으로 그가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KCC로 오면서 마음의 짐이 사라지고 있다. 허 감독은 자신이 유망주로 꼽은 강병현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강병현은 KCC 이적 후 출장한 6경기 모두 30분 이상을 뛰었고, 이 가운데 5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평균 11.5 득점에 3.5 리바운드, 2.1 어시스트다. 허 감독은 강병현의 약점인 외곽 슛을 보완해 주고 있다. 강병현은 “허재 감독님이 추구하는 농구 스타일과 너무 잘 맞는 것 같다”며 흡족해하고 있다. 도움을 받는 것은 허 감독만이 아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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