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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디어 겸영 세계적 추세 맞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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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한 진보학자가 1994년 출간한 책 제목에서 유래됐다. 당시 우리 사회의 우편향성을 지적하고, 균형 있는 사고가 필요함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 말이 진보론자의 가슴을 여전히 울리고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균형적 사고의 결여라고 본다. 서로 자기 생각이 옳다며 좌와 우의 날개만 펄럭일 뿐 새는 날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과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둘러싼 논쟁은 자기중심적 사고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나라당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언론노조는 ‘MB악법’이라는 선동적 표현을 쓰며 방송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방송법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개정안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 대 방송 공공성의 대립만 심화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두 가치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충분히 찾을 수 있다. 1980년 언론 통폐합 이후 30년 가까이 방송의 공공성만 되뇌면서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공공성 이데올로기를 독점하고, 그 우산 아래 기거하는 세력까지 있어 문제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1996년 통신법 개정, 독일의 97년 제3차 방송협약, 영국의 2003년 통신법 개정, 프랑스의 2004년 전자 커뮤니케이션법 개정이 그 예다. 이 법들은 모두 방송의 소유 규제 완화를 담고 있다.

 방송법 개정 반대론자는 신·방 겸영이 세계적 추세가 아니며,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인다. 그 근거로 드는 사례 역시 같은 나라들이다. 이들은 독일의 경우 특정 방송사의 시청자 점유율을 30%로 제한한다고, 프랑스는 신문·TV·라디오의 세 시장에서 모두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고, 영국은 전국지 신문시장의 20% 이상 지배할 경우 민영 방송인 ITV 지분의 20% 이상 소유할 수 없게 한다고, 미국은 동일 지역에서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경영할 수 없도록 금지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추세는 ‘신·방 겸영에 따른 정밀 규제’라고 역설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소유 규제 완화가 세계적 추세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선진국들은 신문과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면서 그 부작용을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처럼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같은 외국 사례를 놓고 규제론자는 규제만 보고, 허용론자는 허용만 보는 아전인수식 해석은 곤란하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허용론자의 주장과 규제론자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면 된다. ‘원칙 허용’과 ‘정밀 규제’가 해법이다.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은 원칙 허용을 채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수용하고, 그 다음에 여론 다양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는 규제 방법을 추가하면 된다.

외국의 정밀 규제 사례는 참고자료로 유용하다. 미국식 상업방송 모델보다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한 유럽식 방송 체제가 우리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의 언론 다양성 자문패널이 만든 2003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모델이 ‘시청자 점유율 접근’이다. 한나라당 법안에는 시청자 점유율 제한이 없으니, 독일처럼 한 방송사가 점유할 수 있는 한도를 30%로 정하고, 신문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는 신문사가 방송사를 소유할 경우 허용 한도를 25%로 낮추는 내용을 추가하면 된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 듯 미디어도 공공성과 산업성을 균형 있게 갖춰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올해는 다음 주장을 관철하려는 사람보다, 남의 주장을 들으려는 사람이 더 행복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문재완 한국외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