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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사업 사전·사후평가 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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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감사원과 검찰의 공적자금 조사결과는 많은 국민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공적자금을 관리하는 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가 지급보증이 있는 99억원짜리 채권을 단돈 100원에 넘겼다거나, 공적자금으로 연명하는 금융기관들이 임직원과 사원들의 복지를 위해 흥청망청 돈을 지출했다는 사실은 사회 많은 부분의 도덕적 해이, 무책임, 부실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번에 낭비된 것으로 나타난 1조760억원을 청년실업자들의 일자리 창출이나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면 심각한 실업문제는 상당히 완화됐을 것이다.

이런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현상이 어디 공적자금 집행에만 한정돼 있겠는가. 1990년대 초 우루과이라운드에 대비해 10여년 동안 집행한 42조원의 농어촌구조조정자금, 매년 풍수해를 복구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지원하는 몇천억원의 피해복구 비용, 중소기업을 위한 매년 6조원대의 지원기금 등 많은 예산사업이 어떤 성과를 얻었으며, 정책 대상집단과 국민에게 어떤 효과를 산출했는지 명확하게 제시한 적이 없다.

이런 국정운영은 앞으로도 제2, 제3의 공적자금 부실사태를 가져올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적자금뿐 아니라 정부예산 전체의 운용에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요청된다.

미국과 영국 같은 선진국들은 1990년대부터 성과중심적 국정운영을 통해 정부예산의 효과가 구체적으로 제시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정부성과법(GPRA), 재정집행 관리개혁 성적표(Executive Branch Management Scorecard)제도 등을 통해 정부사업의 구체적인 성과를 나타내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공공서비스 합의문(PSA), 서비스전달 합의문(SDA)을 통해 성과목표를 명시하고, 각종 정부사업에 대한 과정평가(Gateway Review Process)를 통해 사업단계별 집행과정을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의 사전평가, 집행평가, 사후평가를 통한 엄밀한 정부자금 성과관리는 예산집행의 효율성과 사업의 효과를 증진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각종 정부사업에 대해 엄밀한 사전타당성 분석을 하고, 각종 사업의 집행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되는지를 체계적으로 점검해야 하며, 사업 종료 후에는 성과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사업성과 명시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 예산사업의 성과를 담당부서에서 입증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 관리예산처(OMB)는 반대의 증거가 없는 한 부서 사업들은 효과성이 없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에 의해 각 부서 담당자는 사업의 효과성을 입증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예산 집행에서 방만한 운용 또는 감독.관리 소홀로 손실을 끼친 경우에는 엄중한 책임이 뒤따르고 있다.

정부예산의 집행에서 일반국민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사업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담당기관이나 부서를 관리.통제할 수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예산 및 공적자금을 집행하는 기관은 자신이 담당하는 예산사업이 효과적으로 집행된다는 것을 사전평가, 중간평가, 사후평가를 통해 명확하게 입증해야 한다. 이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사업중단, 예산삭감, 사업담당자 문책 등의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때 국민의 혈세를 자신의 돈처럼 효과적으로 관리할 것이며, 국가경쟁력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정부예산의 효율적 집행은 국가경쟁력의 기본이다. 국가운영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국민의 경제적.사회적 생활이 윤택해지도록 하고, 예산의 효율적 집행으로 국민의 분노와 상실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자 혁신일 것이다.

박병식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 회장.동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