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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주입, 개화시기 마음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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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호접난은 화려한 꽃으로 서양난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다. 사무실이나 가정에 호접난 화분 하나만 갖다놔도 실내가 환화게 보일 정도다.

그러나 한번 꽃을 피고 진 호접난은 좀처럼 두번 꽃을 보기 힘들다. 대부분 따뜻한 실내에서 키운 탓이다. 호접난은 섭씨 영상 15~18도 정도의 저온처리를 해주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 너무 따뜻해도, 너무 추워도 꽃을 볼 수 없다. 호접난 농원은 이 정도 온도를 맞추느라 출하 한달 전부터 겨울이면 온실에 난로를 피워주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세게 틀어준다. 월동에 해당하는 춘화(春花)처리를 해주는 것이다. 꽃이 곧 호접난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호접난처럼 꽃이 피어야 상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꽃 때문에 그 반대가 되는 것도 있다. 배추나 잔디는 꽃이 피면 더 이상 잎을 만들지 않는다. 잎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대접을 받는 데도 꽃만 피면 더 이상 새로운 잎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금호생명과학연구소 노유선 박사팀과 건국대 김두환(분자생물학)교수팀은 호접난을 비롯한 식물의 꽃과 씨름하는 과학자들이다. 이들은 온도와는 상관없이 꽃을 피게 하는 호접난, 꽃 대신 잎을 계속 만드는 배추나 잔디 등을 개발하고 있다. 배추나 잔디도 저온 상태를 거치지 않고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두 연구팀은 호접난에 개화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삽입해 꽃피는 특성이 새로워진 호접난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성공 여부를 확인하려면 몇개월이 걸리지만 기대가 큰 실험이다. 잘만 되면 온도 때문에 꽃을 못보는 일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식물에는 개화를 억제하는 유전자들과 개화를 촉진하는 유전자들이 각각 따로 있다. 이 유전자들은 노 박사를 비롯해 영국 존인스세터, 미국 위스콘신대학과 UC데이비스대학 등의 과학자들이 찾아내 그 기능을 알아낸 상태다. 이를 호접난 등에 넣어 품종 개량에 나선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개화를 억제하거나 촉진하는 유전자 중 어느 것이 우세하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꽃이 피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식물들이 꽃을 피우기 위해 적절한 저온을 필요로 하는 것은 강추위에 약한 꽃들이 냉해를 입지 않기 위한 진화전략으로 식물학자들은 보고 있다.

연구팀은 호접난에 두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 하나는 호접난 세포에 개화 억제 유전자를 억누를 수 있는 개화 촉진 유전자를 넣어주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저온처리 없이도 마치 저온 처리를 해준 것 같이 개화를 촉진시키는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이다.

이들 유전자를 호접난 세포의 원래 유전자에 틈을 벌려 끼워 넣는다. 그중에서 새로 넣어주는 유전자가 잘 들어간 세포만 골라 호접난 성체로 키우는 것이다.

노 박사는 "이번 실험이 성공하면 대부분 저온처리를 해야 하는 동양난을 비롯해 다양한 꽃의 품종 개량을 할 수 있다"며 "유전자 기술이 꽃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잔디나 배추가 꽃이 피고 나면 잎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은 잎을 생성하던 조직이 꽃을 만드는 조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종족 보존을 위해 씨앗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우선이어서다.

노 박사팀은 추운 겨울의 저온처리가 있은 뒤에도 잎을 계속 만들어 내는 배추와 잔디를 개발 중이다.그렇게 되면 배추의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고, 잔디밭에 흙이 드러나는 곳에 대한 보수작업을 거의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유전자 공학은 식물의 생태조차 유리하게 개량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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