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거품 꺼질 때 감원하니 후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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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달 초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대 교수들은 ‘봉급 1% 자진 삭감’ 운동을 벌였다.

경기침체의 한파에 맞서 교직원의 해고를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300여 명의 교수와 강사 중 30% 이상이 스스로 봉급을 깎았다. 십시일반식 고통분담을 통해 이 대학은 1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그 덕에 교직원 3~4명이 해고를 면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웹디자인 업체인 핫스튜디오는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감원도 하지 않았다. 2000년 닷컴 거품 붕괴 때와는 정반대의 선택이었다. 당시에는 일부 직원을 해고했지만 성과급은 나눠줬다. 이 회사는 “감원의 후유증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미국에선 10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올해에는 또 다른 100만 명이 실직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유례없는 경제위기로 대량 실직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예전과 다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 삭감을 통해 감원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다. 효율과 생산성을 최고의 가치로 받드는 미국에서도 ‘일자리 나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뉴욕 타임스(NYT)는 이런 현상이 네바다의 카지노에서부터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업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델컴퓨터는 무급 휴가를 확대했고, 모토로라는 임금을 깎았다. 카지노 운영업체들은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해 비용을 줄이고 있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해고가 비교적 수월한 미국에서 기업들은 상시 구조조정을 통해 이미 인력을 정예화시켜 놓은 상태다. 구조조정 대상이 될 유휴 인력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 따라서 사람을 내보냄으로써 당장 아낄 수 있는 비용을 생각하기보다 인력 유출에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는 기업이 늘었다.

제니퍼 챗맨 UC버클리 교수는 “일자리 나누기는 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새로운 직원에 대한 훈련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들도 이에 긍정적이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얼마나 깊고 길게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우니 임금이 깎이더라도 일자리를 지키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지난해 잇따라 감원 계획을 발표한 일본 기업들도 점차 ‘일자리 나누기’로 방향을 틀고 있다.

상용차 제조사 이스즈는 계약직 사원 550명에 대한 해고 계획을 지난달 말 거둬들였다. 대신 전 직원의 임금을 일시적으로 삭감하고 근로자 1인당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형차를 생산하는 닛산(日産)디젤공업도 파견사원 200명을 해고한다는 계획을 최근 취소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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