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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헝그리서 앵그리로… 건국 60년의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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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대한민국 60년 성찰과 전망
굿 소사이어티 편, 지식산업사, 624쪽, 3만원

 “권위주의 시대 한국은 ‘헝그리(hungry)사회’였다. 먹고살기도 어려웠고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도 심했다. 풍요로운 민주사회에 사는 지금 사람들은 불만으로 골이 잔뜩 나있는 상태, 즉 ‘앵그리(angry) 사회’로 바뀌었다. 민주화 이후 정치나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더 높아졌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의 이 지적은 주로 사회갈등에 대한 관찰에서 나온 말이지만, 건국 60년을 보는 우리 사회의 엇갈리는 시선에도 썩 잘 적용된다. 지난 한 해 ‘건국절이냐, 광복절이냐’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에서 보듯 1948년 8월 건국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다는 냉소주의 심리도 일부 없지 않다. 찡그린 얼굴로 현대사를 삿대질하는 ‘앵그리 파’의 모습이다.

이 책 필자의 한명인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현대사는 “프로펠러 비행기도 만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이 제트기를 제작한 기적의 역사였다”(339쪽)라고 감격을 토로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셈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포럼 굿소사이어티(공동대표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김인섭 법무법인 태평양 명예 대표 변호사)의 작품이다. 지난 한 해 역사·정치·경제에서 문화·외교·과학까지 9개 분야에 걸친 세미나의 발제원고와 토론을 실었다.

“대한민국의 긍지를 마음껏 드러내고 싶었다”는 출간 의도에서 보듯 건국 60년의 성취를 긍정적으로 보듬고 있지만, 진보 쪽의 소수의견도 함께 실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일단 그런 긍정적인 시각은 경제 부문 발제를 한 좌승희(경기개발연구원장)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1960~70년대 연평균 8%가 넘는 초고속 성장을 했고 이것은 세계경제개발사에 지울 수 없는 금자탑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민주화 이후 20년 한국 사회는 ‘중진국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역주행’(155쪽)을 거듭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경제력 집중을 청산하는 평등주의 정책이 지난 20여 년 동안 성장 추세의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 혁신하고 흥하는 자를 역차별하는 민주화 세력 때문이다.”

이 책에서 진보·보수 사이의 갈등이 은연중 묻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역사학자 한영우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대한민국의 놀라운 성공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히지만, 미래의 과제를 안고 있다며 다소 유보적인 입장이다. 이에 비해 성장 보다 분배를,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는 강철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60~70년대 성취에 크게 비판적이어서 구분하자면 앵그리파에 속한다.

『대한민국 60년』은 비유컨대 밥상이다. 건국 60년의 자취를 분야별로 나눠 번듯하게 한 상을 차렸다. 하지만 딱히 젓가락이 가는 맛깔스런 음식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조금 아쉽다. 왜 그럴까? 편집의 묘미가 빠진 때문은 아닐까? 세미나 원고를 그대로 담았다고 바로 매력적인 단행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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