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본 오키나와 - 미군기지 반대 거센 격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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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56년 일본 경제백서는“이제 전후(戰後)는 끝났다”고 선언했다.이후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지만 정치.외교는 아직 패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오늘까지 이어지는 오키나와(沖繩)의 전후사가 이를 대변한다.최근 미군기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국.일본정부.오키나와 주민 사이의 3각(角)신경전은 전후를 벗어나려는 일본의 몸부림으로 비쳐진다.오키나와 주일미군은 한국의 안보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현지취재를 통해 오키나와 문제(일본문제),미.일안보

,나아가 동아시아 안보문제를 점검해 본다. [편집자]

“우리 오키나와는 1609년 이래 일본의 권력,미국의 권력에 당하기만 해왔다.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일본정부를 바꿔놓아야 한다.”

“다수의 폭력으로 헌법조차 무시하고 법을 개정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주민이 주인되는 오키나와를 만들자.”

지난 5일 오키나와 나하(那覇)시의 요기(與儀)공원에서는 3천여명(주최측 발표)이 모인 가운데 미군기지에 반대하는'오키나와 연대집회'가 열렸다.

데루야 슈덴(照屋秀傳) 반전(反戰)지주회회장.후와 데쓰조(不破哲三) 일본공산당위원장등 참석자들은 이틀전인 3일 일본각의가 미군용지특별조치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데 대해“시합도중 룰을 바꾸는 비겁한 처사”라며 맹렬히 비난했다.이날 집회

를 주관한 전국노동조합총연합(全勞連)은 렌고(連合)에 이은 일본 제2의 노조단체로 공산당 계열에 속한다.

그러나 집회에 뒤이은 참석자들의 시위행진을 맞이한 거리의 주민들은“정부는 오키나와를 차별말라”“주민토지를 반환하라”는 구호에 지지정당을 떠나 우레같은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다.

오키나와의 경제는 국가.관광.기지의 속칭'3K'로 떠받쳐진다고 표현된다.어느 현보다도 중앙정부의 보조를 많이 받고,미군기지 덕분에 물자.고용면에서 혜택을 받는데도 기지반대 여론이 강한데는 뿌리깊은 반외세감정도 한몫했다.

1609년 일본본토의 사쓰마(薩摩)지방에 정복당한 이래 2차대전후에는 미국에,72년부터는 다시 일본에 편입돼 오늘에 이르렀다.2차대전 말기의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무려 25만명이 희생당했다.

주민여론을 등에 업고 오타 마사히데(大田昌秀)오키나와지사는 지난달 25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와의 회담에서 기지사용연장을 거부했다.미군기지가 있는 땅의 지주들이 토지임대기간 연장을 거부할 경우 극동지역 최대의 미공군기지

인 가데나(嘉手納)를 비롯한 12개 시설은 5월14일부터 불법점거 상태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지주들중 3천여명은 미군기지 존속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부러 한평 또는 그 이하의 땅을 구입해 계약기간이 끝나면 절대 재계약하지 않기로'작심'한 이른바'1평짜리 반전 지주'들.

고심하던 중앙정부는 강공책을 선택했다.미군용지특별법에'계약기간이 만료돼도 토지수용위원회가 심리중인 한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은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미.일안보조약을 준수한다는 국가적 명분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사민.공산당만 반대세력으로 남게됐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반(反)본토 감정은 더욱 골이 깊어지게 됐다.덩달아 중앙정계에서는 법안찬성 여부를 둘러싸고 연립정권내에서 자민당과 사민당간에 균열이 생겨 정계재편 움직임이 가속화하는등 파문은 넓고 깊게 번지고 있다. [오키나와=노재현 특파원]

<사진설명>

일본 정부의 특조법 개정에 앞서 지난 5일 오키나와 나하시에서 열린 미군기지에 반대하는'오키나와 연대집회'모습. [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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