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역사] 75. 석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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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아로운전’을 일어로 번역한 무라마스(右)와 필자.

해가 저무는가. 만나야 할 사람들을 서둘러 만나야겠다.

서린호텔에서 NHK 드라마PD를 만났다. 가와바타 마시미치. 목포에 공생원이라는 고아원이 있다고 했다. 같이 가보았다. 유달산 아래 후미진 곳에 있는 초라한 고아원. 윤치호라는 선교사가 일본 여성 다우치 지스코와 결혼해 많은 고아를 길러냈다는 사연. 드라마로 써주면 NHK에서 방영하겠다고 했다. 몇 해 동안 고민했다. TBC에서 방영한 한.일 관계 소재의 '파도여 말하라' 3부작으로 대신하려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가와바타와는 30년 지기가 됐다. 많은 사연이 있다.

도쿄 롯폰기 가까이에 마쓰야마 젠조가 살고 있었다. 매우 가까운 친구가 됐다. 사할린 동포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아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지 않았군"하면서 시나리오를 써 영화를 만들어주었다.

가지야마 도시유키가 '조선총독부'를 쓴 유주현과 나를 초청해 맘껏 일본에 대해 욕을 해보라고 했다. 길옥윤이 아카사카에서 술집을 하고 있었다. 고향인 평북 영변을 잊을 수 없다며 가사 하나 써달라고 했다. 10여년 만에 써주었다. 그가 작곡을 했다. 아직 국내에선 발표되지 않았다.

길옥윤의 소개로 일본 영화 제작자로부터 주문을 받은 적이 있다. 스노다 후사코가 쓴 '민비 암살'을 각색해 달라고 했다. 그 시대에는 천만의 말씀이라 응하지 않았다.

노년에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모리 아쓰시와의 접촉은 전옥숙의 소개로 이뤄졌다. 그 연줄로 도쿄의 간다 진보초에 있는 이와나미홀의 총지배인 다카노 에쓰코를 만나게 됐다. 고급스러운 일본인들이었다.

내가 쓴 '아로운전' 3부작을 번역해준 무라마쓰 도요노리의 수고를 잊을 수 없다. 그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쓴 '신화는 없다'를 번역한 뒤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양식 있는 유능한 교육자인 그는 또 한국어 학원을 세워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지금은 부인이 학원을 이어 받아 운영하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 한국인 노인들이 사는 '고향의 집'이 있다. 공생원 설립자의 아들인 윤기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만든 곳이다. 윤기와는 지금까지 우정을 나누고 있다.

일본에서 국제한국연구원을 만들어 한국과 관련 있는 문화재.서적.미술품.유물 등을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수집해온 사학자 최서면과는 너무 늦게 만났다. 대단한 술 실력에 명석한 머리를 가진 그를 볼 때마다 그저 감탄할 뿐이다.

나고야에 정환기라는 동포 사업가가 있다. 돈을 모아 한국어 학교를 세웠다. 글도 잘 써 '재일을 산다' 등의 작품도 있다. 내가 그의 작품을 번역하곤 했지만 시중에 내놓지는 못했다.

후루야 고사부로라는 사찰 출신의 기인이 있다. '김옥균'을 영화화해 달라고 일본돈 100만엔을 내게 준 적이 있다.

한운사 작가

◇'구름의 역사' 74회 기사 중 연암 전기의 원고를 '10년 만에 마무리했다'를 '5년 만에 …'로 바로잡습니다. 책으로 출간된 것이 10년 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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