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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장학금으로 학교 다닐 거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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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9일 효택이네 집에 청일배움터 이미숙 교사(中)와 아이들이 새로 태어난 송아지와 어미 소 ‘박치기’를 보러 왔다. 오범석씨(右), 막내 효정이, 첫째 효택이와 둘째 광택이도 함께했다. [횡성=박종근 기자]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효택(8)이네 집에는 지난 크리스마스 날 경사가 났다. 키우던 암소 ‘박치기’가 송아지를 낳은 것이다. 박치기가 새끼를 낳던 날 효택이네에는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함께 기쁨을 나눴다. 29일에도 이웃들은 효택이의 아버지 오범석(46)씨가 송아지 젖을 먹이는 동안 예민한 박치기를 붙들어 주는 등 소를 돌봤다.

박치기는 효택이네 소가 아니다. 주민들이 함께 기르는 ‘마을 소’다. 횡성군에서도 산골로 꼽히는 청일면·갑천면·서원면·강림면 주민들로 구성된 ‘횡성고른기회 배움터 협동조합’이 지난해 6월 6개월짜리 암송아지 70마리를 사 조합원에게 분양했다. 사료비 등은 조합이 대고 주민들은 기르는 품을 들인다. 주민들이 소를 공동으로 키우기로 한 것은 아이들의 교육 때문이었다.

청일면 등 네 곳은 아이들이 학원에 가려면 횡성읍까지 40분가량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오지다. 학교를 마치고 할 일이 마땅치 않아 초등학생과 중학생 100여 명이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젊은 주민 10여 명이 교육 문제를 해결해 보자며 지난해 머리를 맞댔다. 협동조합을 꾸리고 암소를 길러 송아지가 태어나면 그 수익으로 배움터를 운영하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소 살 돈을 마련할 방법을 고민하던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실시한 사업 공모에 선정돼 지난해부터 매년 3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주민들은 이 돈으로 암송아지를 샀다. 4개 면에 방과후 교실에 해당하는 배움터 한 곳씩도 열었다. 장학재단의 지원이 끝나는 2010년께는 소를 키워 자력으로 배움터를 운영하고 아이들에게 ‘한우장학금’을 줄 계획이다.

◆“마을 전체가 바뀌어”=주민들은 시간이 나면 배움터에서 강의도 한다. 29일 오후 갑천면 배움터에선 중국에서 시집온 판소홍(25·여)씨가 학생 9명과 중국 산둥요리를 만들며 ‘다문화체험 강의’를 했다. “중국 산둥요리에는 마늘 같은 양념이 많이 들어간다”는 판씨의 설명을 들으며 아이들은 파를 다듬고 마늘을 깠다. 청일면 배움터 이미숙(32·여) 교사는 “마을에 조합 소가 들어가면서 아이들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기축년(己丑年) 소띠의 해를 앞두고 주민들은 신동미(35·여)씨네 소가 곧 새끼를 낳을 것이란 소식에 들떠 있다. 효택이네에 이어 조합이 배출하는 네 번째 송아지다. 송아지들이 자라는 것처럼 효택이도 다음 주부터 청일면 배움터에 다니기로 했다.

“효택이가 좋은 교육을 받게 된 것도 다 소들 덕분이지요. 그래서 ‘공부 소’예요. 기축년인 내년에는 마을에 송아지가 많이 태어나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효택이 아버지 오씨에게 박치기는 미래이자 희망이었다.

횡성=정선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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