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자신이 만든 공약까지 포기하나” … 김형오 의장에 화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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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이 29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최근 국회 점거사태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김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눈을 감고 앉아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한마디로 안타까운 마음이다.”(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상당히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현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 답답하다.”(홍준표 원내대표)

29일 김형오 국회의장의 기자회견을 두고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나온 반응이다. 대체로 부정적이다. 특히 “여야 합의된 안건만 31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부분을 두곤 불만이 많았다. 사실상 여야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권은 그간 입법 혼란상을 올해 내로 끝내고 싶어했다. 1월 1일부터 새로운 각오로 출발하자는 차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연설도 1월 2일로 잡았다. 하지만 김 의장의 발언대로라면 법안이 처리되더라도 임시국회 종료일(1월 8일) 임박해서나 가능하다. 박희태 대표는 “많은 국민이 목말라 하는 법안들의 연내 처리가 무산되는 것 같아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의원들 비판은 더 노골적이다.

▶장광근(3선)=“김 의장의 제안은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말에 보일 걸 연초로 10여 일 미룬다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여옥(재선)=“여러 번 죽는 게 정치인의 운명이자 특권이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있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이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 소속 의원 27명도 “의장의 애국심이야말로 불법 국회를 정상화시키고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유일무이한 수단”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청와대에선 반응을 자제했다. 이동관 대변인이 “김 의장도 국민의 기대가 어디에 있는지 잘 헤아리고 계실 것”이라는 정도로만 논평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부글부글 끓었다. 익명을 요청한 청와대 관계자는 “중재 노력을 하려면 진작에 했어야 했다”며 “한나라당이 처리할 법안의 숫자를 줄이는 작업을 하면서까지 야당에 대화 요청을 하고, 또 야당이 불법적으로 본회의장을 점거했을 때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가 지역구인 부산에 나타나 기자회견을 할 수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주 김 의장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진들을 보면 진정성이 전혀 없고, 자기 체면만 유지하기 위한 기회주의적인 행보를 했다”고도 했다. 여권은 하지만 조심했다. 김 의장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 때문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긴급 의총에서 “우리가 움직여도 본회의는 못 연다”며 “모든 핵심 키는 의장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원들에게 “가능한 한 모양을 갖추고 체면을 차리려는 의장과 여러분이 통화되면 잘 말씀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국회 세계에 없을 것”=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9일 극한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국회사태에 대해 “이런 국회는 세계에 없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자신의 81번째 생일(30일)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과 나눈 대화에서다. 맹 수석은 이날 오전 축하 난을 들고 상도동 자택을 방문했다. YS는 “국회 의사당 사무실의 문짝을 해머로 때려 부수는 그러한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세계에 없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반복했다고 양측이 전했다. 또 “야당이 허구한 날 여당의 발목잡기만 해선 안 된다. 야당이 이렇게 해선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을 향해서도 YS는 “다수 의석을 가지고도 아무 일을 못하면 무능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정애·서승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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