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톱>일본인 시각으로 만드는 광복절 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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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국의 광복절 특집 TV 프로그램을 일본인이 진행한다.'

SBS가 이런 획기적 사건(?)을 시도한다.

프로그램의 소재는 관동대지진.진행자는 학살 현장.목격자등을 찾아다니며 관련 일본인들을 인터뷰한다.탐방현장은 SBS가 정하지만 어떤 얘기가 오가는가는 전적으로 진행자와 인터뷰 대상 일본인에게 달려있다.SBS는 인터뷰 과정에서 드러나

는 일본인의 감정표현만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을 예정.

프로그램의 기획과 연출을 맡은 시사교양국 윤동혁(46)제작위원은 “한.일이 맹목적인 적대감에서 벗어나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파고들어야 할 시기”라며“관동대지진에 대한 일본인의 솔직한 입장을 밝히는 것도 이를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말했다.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1일 도쿄(東京)와 요코하마(橫浜) 일대에서 발생,14만명이 숨지고 가옥 57만채가 무너진 대형참사였다.당시 가족과 집을 잃고 방황하던 일본인들 사이에'한국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등의 유언비어가 퍼

지며 한국인 7천여명이 학살당했다.만 35년간의 압제와 더불어 한.일간 감정의 골을 한층 더 깊게 파내린 참변이다.

이 프로그램의 인터뷰는 일본의 중견여배우 구로다 후쿠미(黑田福美.41.사진)가 맡는다.구로다는 70년대말 국가대표 배구선수였던 강만수(42.현대자동차써비스 감독)씨의 플레이에 매료돼 한국을 익히게 됐다.

이후 88년 올림픽을 전후해 일본 방송국들이 만든 각종 한국 관련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활약했다.

지금은 한국인보다 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지한파 여배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차례 한국을 찾았던 이야기를 담아 80년대말 일본에서 '서울,마이 하트(My Heart)'라는 책을 펴냈으며 지난해 국내에서도 번역,출간됐다.

구로다는 SBS의 프로그램 진행 제의를 받은 뒤“한국 TV 프로그램이라면 출연료를 따지지 않겠다”며 모든 것을 SBS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일본 현지촬영은 6월25일부터 7월2일까지 이뤄진다.

기획.연출을 맡은 윤위원은 그간 94년 한국방송대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은'버섯,그 천의 얼굴',올해 설날 방송된'게'등 SBS 자연다큐멘터리를 도맡아 제작해 왔다. 〈권혁주 기자〉

<사진설명>

SBS광복절특집 진행을 맡은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80년대말 방한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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