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칼퇴근 하는 날’주 1회 제정 … 불임직원엔 시술비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선박 기자재를 생산하는 부산시 다대1동 선보공업 직원들은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만 되면 일제히 퇴근한다.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가정의 날이다. 내년에는 한 달에 한 번 오전에만 근무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가족휴일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주말에는 직원 가족이 회사가 제공한 주말농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직원 자녀들이 회사 견학과 체험 놀이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가족친화경영 담당이사도 있다.

이 회사는 종업원 170명, 연간 매출이 670억원인 중소기업이지만 가족을 배려하는 제도는 여느 대기업 못지않다. 이 회사 김성규 총무기획이사는 “직원들이 가족같이 지내고 가정을 중시하는 경영을 하기에는 중소기업이 강점이 있다”며 “10여 년 전 가족 중시 제도를 도입한 뒤 이직률이 낮아지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가족친화경영’이 기업의 새로운 슬로건으로 등장했다. 직원이 일과 가정 양쪽에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회사가 제도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른바 ‘패밀리 프렌들리’ 경영이다. 이렇게 하면 직원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이는 결국 생산성 향상과 대고객 서비스의 질 제고로 이어진다고 한다.

한국보다 앞서 저출산을 경험한 선진국에선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가족친화정책을 도입해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다.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국내 기업들도 그 뒤를 좇고 있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8일 14개 회사와 공공기관을 올해 처음으로 ‘가족친화기업·기관’(로고)으로 인증했다.

유한킴벌리가 5월 대전공장에서 개최한 가족 초청 행사에서 직원 자녀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上).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오른쪽)이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노인용 리프트를 체험하고 있다(左). 제주공항 면세점의 한 임신부 직원(왼쪽)이 회사가 배치한 임산부 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다(右). [각 회사 제공]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워킹맘’이 가장 원하는 것은 ‘유연한 근무시간’이다. 스웨덴 등 선진국에선 이미 아이를 둔 부모가 출퇴근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와 정상 근무시간의 60~80%만 일할 수 있는 ‘파트타임 근무제’가 활성화돼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지난해부터 탄력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만 3세 이하의 아이를 둔 직원이 적용 대상이다.

국민연금공단에는 ‘육아양육휴가’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만 3세 미만의 아이를 둔 직원이 한 달에 하루 유급휴가를 사용해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이 공단 경영지원실 장지혜 과장은 “휴가를 이용해 아이와 함께 충분히 놀아주거나 어린이 집 평일 행사에 참가한다”며 “임신부도 이 휴가를 이용해 병원에 갈 수 있어 이용률이 매우 높다” 고 설명했다.


현재 법정 육아휴직 기간은 1년이다. 여기에다 더 얹어주는 회사도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파격적으로 2년을 더 준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3개월 연장했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는 데도 많다. LG생명과학이 운영 중인 ‘패밀리데이’는 월 1회 가족과 함께 공연이나 영화를 볼 수 있게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제도다. 대웅제약 직원과 가족들은 격주 토요일마다 회사가 제공한 주말프로그램을 이용해 리본 공예, 쿠키 만들기 등을 배우며 특별한 추억을 쌓는다.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불임 여성이 늘자 이들의 임신을 도와주는 회사도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인공수정이 필요한 직원에게는 별도의 휴가를 주고 1회에 최대 200만원까지시술 비용을 지원한다. 5명이 혜택을 받았다. 이 회사 HR 기획팀 신지은 대리는 “회사의 지원을 받아 출산에 성공한 직원도 있다”며 “눈치 보지 않고 단기간 내 불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호응이 매우 좋다”라고 말했다.

부부 갈등이나 자녀 양육 문제에 고민이 생겼을 때 전문가를 붙여주는 회사도 있다. 유한킴벌리가 운영하는 ‘피톤치드’ 프로그램이다. 이 회사는 정년퇴직자들을 위한 재취업, 창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김은하 기자


제주도시개발센터
임신한 직원에겐 도우미 배치

제주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운영하는 제주공항면세점에서 일하는 이선정(32)씨는 올해 4월 딸을 출산하기 직전까지 회사에 나갔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임신부에게 무리한 일일 수도 있었지만 ‘임산부 도우미’가 있어 가능했다. 임산부 도우미는 하루 1~2시간 휴식이 필요하면 언제든 부를 수 있다. 물류팀 직원에게는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하도록 전용 도우미가 배치된다.

이씨는 출산 후에도 도우미 제도를 이용해 부담 없이 젖을 짜 보관할 수 있었다. 회사 임산부 휴게실은 유축기뿐 아니라 공기청정기, 전용 냉장고, 발 마사지기 등 임산부를 위한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임신 전후에는 분만 과정, 임신 중 체조법, 모유 수유법 등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이 회사에는 모성보호위원회가 있다. 위원회는 1년에 두 번 회의를 열고 임산부와 여성 직원을 위한 정책을 논의한다. 위원회가 1년에 네 차례 임산부 교육을 담당한다. 위원장은 한라대 간호복지학과 강문정 교수가 맡고 과장·매니저·판촉직원 등이 직급별로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 회사 영업팀 송경희 대리는 “직원들이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면 제도화돼 임산부가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하 기자


교보생명
가족애 느끼게 노인·임종체험

교보생명의 이승현(47) 마케팅기획팀장은 지난달 초 서울 효창동의 노인체험센터를 찾았다. 여기에서 백내장·녹내장용 안경을 쓰거나 팔이나 관절에 모래주머니 등이 달린 장비를 끼고 노인처럼 생활해 봤다. 이 회사가 직원에게 제공하는 가족 친화 프로그램의 하나다. 노인의 일상생활을 직접 경험해 보면서 노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팀장은 “겉으로 보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며 “노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노인을 잘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지난해부터 가족 친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체험’을 도입했다. 각종 체험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까지는 4000여 명의 임직원이 ‘임종 체험’에 참여했다. 참가자가 밤에 저승사자의 안내를 받아 자신의 영정 사진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수의를 입고 자기 이름이 적힌 좁은 관 속으로 들어가면 뚜껑이 닫히고 흙이 뿌려지며 곡소리가 울려 퍼진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임종 체험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J-HOT]

▶ "대책없이 대통령 좀 되지말라" 정운찬 '작심 강연'

▶ "1:1대결땐 한국 이기지만, 3:3일땐 일본 이겨"

▶ 강기갑 '휴~ 살았다'…벌금 80만원 선고

▶생방송 중 미끄러진 기상캐스터에 앵커 반응이…

▶'순결서약' 청소년들 5년만에 다시 조사하니…'어머나'

▶드라마 국장 "연기대상, 연기 잘한 배우 주는게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