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89>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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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16면

메이저리그 격언 가운데 “월드시리즈 우승 감동은 15분 동안 지속된다”는 말이 있다. 시즌 내내 온갖 노력을 기울여 포스트시즌 무대에 나가고, 거기서 쟁쟁한 상대를 물리치고 정상에 오른 그 쾌감이 고작 15분 뒤면 부서진 포말처럼 없어진다는 거다. 좀 과장된 표현일 수 있겠지만 그 배경은 ‘다음 시즌에 대한 걱정’이다. “아 이제부턴 어떡하나”에 대한 고민이 그만큼 크다는 것. 이 말은 그 준비가 철저해야 살아남고, 이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KBO, 지금이 낙하산 총재 운운할 때인가

지금, 그러니까 2008년 12월 28일 한국 프로야구가 서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 곳은 아마도 천국으로 가는 순탄한 계단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마는 절벽에 가깝게 느껴진다. 500만 관중 시대로의 복귀가,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역사에 남을 영광이 모두 등 뒤로 지나가 버렸다.

‘그 15분’이 지난 것이다. 이제 앞에는 대규모 경제위기에 따른 프로 스포츠 전반의 불안이 놓여 있다. 그 와중에 프로야구는 수장(총재) 없는 공백을 메워야 하는 엎친 데 덮친 위기를 맞고 있다. 8구단 체제는 아직 비틀거리고 유소년 야구는 우물이 메말라 가고 있다.

그래서 자꾸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낙하산 총재 운운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프로야구는 ‘정치 논리’가 아닌 ‘경영 논리’로 풀어 나가도 될까 말까 한 시기인데, 그래서 지금은 CEO형 총재도 모자라는 판인데. CEO형 총재가 경영능력뿐 아니라 전략 수립 능력을 가져야 살려낼 수 있는데, 그래야 프로야구가 비전을 갖고 미래로 나갈 수 있는데, 제2의 경제공황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살아남고, 살아남은 이후에 그 성장을 논할 수 있는데.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또 지금은 글로벌 마인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인데.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가 야구 소비자의 안방을 장악하고 지갑을 털어 가고 있는데. 그들과 웃으며 WBC를 논하고, 아시아시리즈를 나란히 하면서 속으로는 그들로부터 한국시장을 지켜 내고 내실을 다져야 하는데. 그런데 2009년 WBC에 출전할 대표팀 감독 임명부터 갈팡질팡해서는 안 되는데, 애국심과 국가관은 물론이고 진정한 프로의식이 동반되어야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데.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무엇보다 그런 소신을 지키고 프로야구를 주관해야 할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자꾸 사조직화되는 분위기를 줘서는 안 되는데, 그리고 그 안에 ‘우리끼리’ 문화가 생겨 잘 지내는 사이끼리 서로서로 자리를 나눠 가져서는 안 되는데. 구단은 구단대로 ‘함께 못살더라도 다른 구단이 잘사는 건 볼 수 없다’는 그릇된 이기주의가 팽배해서는 안 되는데. ‘내 편 네 편’으로 구단과 선수협이 맞은편 논리를 펼쳐서는 하나가 이기거나 살기는커녕 둘 다 죽는데.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2008년 한국 야구의 ‘그 15분’은 끝났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위기의식이고 준비다.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낙하산 총재 운운하고 있을 시간도 여유도 없다. 절실한 위기의식, 진지한 소신과 고민, 치밀한 준비 없이는 미래도 희망도 없다. 필요하면 한번 더.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지 스스로 물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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