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46억살 지구 망친 100년간의‘환경 만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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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세기 환경의 역사
J R 맥닐 지음, 홍욱희 옮김
에코리브르, 688쪽, 3만8000원

1952년 12월 4일 영국 런던에 겨울 추위가 닥쳤다. 100만 개의 석탄난로 굴뚝에서 나온 매연이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정체된 공기 탓에 짙어진 스모그는 일주일 사이에 4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가정용 석탄난로 사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집 안의 난로야말로 우리의 자존심’이라고 맞섰던 영국인들은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52년 쿠데타로 집권한 이집트의 나세르는 60년 나일강에 아스완 하이댐을 짓기 시작했다. 전력과 농업생산량이 늘고 홍수 피해도 사라졌지만 토양엔 염분이 쌓이고 지중해의 정어리·새우 어업도 타격을 받았다. 5000년을 유지해온 나일강 시스템을 낫세르는 이집트 민족의 자존심을 내세워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다.

77년 캐나다 정부는 그랜드뱅크스 어장에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선언했다. 정부 보조금 지급에 힘입은 뉴펀들랜드 어부는 새로운 기술로 어족자원을 고갈시켰다.

60년대 연간 100만t에 달했던 어획량은 90년 이후 뚝 떨어졌다. 2만 5000명의 뉴펀들랜드 어부들은 생계를 잃고 실업수당에 의지하는 신세가 됐다.

미국 조지타운대학 역사학과 J R 맥닐 교수가 쓴 『20세기 환경의 역사』는 46억 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 생태계에 10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인류가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조목조목 사례를 들어 설명한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환경적으로 크게 소란스러웠던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다.

인류가 지구환경에 끼친 영향을 강조할 때 흔히들 지구 46억 년 역사를 1년 365일과 비교한다. 1월 1일 탄생한 지구에 공룡이 나타난 것은 12월 12일, 인류가 출현한 것은 12월 31일 오후 7시가 된다. 현생인류가 나타난 것은 밤 11시 49분이고 문명이 탄생한 것은 11시 59분이다. 20세기 100년은 자정 직전 마지막 1초에 해당하지만 지구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20세기 동안 인구는 네 배, 산업생산량은 40배, 세계 경제 규모는 14배 증가했다. 동시에 해양 어획량은 35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3배, 수자원 사용량은 9배 늘었다. 대신 산림면적은 20%, 긴수염고래 개체수는 97% 감소했다.

이 책은 ‘지구의 건강검진표’이기도 하다. 지표면(암권·토권)·대기권·수권(水圈)·생물권으로 나눠 환경파괴의 실상을 소개한 것은 사람으로 치면 피부과·이비인후과·비뇨기과·내과 진료기록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지구의 해’인 2008년 각 분야 세계 석학들이 지구를 들여다보고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작업이 없나 기대했는데, 이 책이 어느 정도 목마름을 채워주고 있다.

하지만 자세한 진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처방’이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세기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역사학과 생태학의 통섭(統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앞의 ‘환경위기’가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청정에너지 사용과 인구 억제, 가난한 나라 소녀와 여성들에 대한 교육 기회 확대 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간단히 언급하긴 했다. 그리고 성공적인 사례로 한국을 들었다.

아프리카 가나 국민보다 가난했던 한국인들이 60년대 이후 경제기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대기오염·하천오염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으나 부유해진 덕분에 생태적 혼란을 극복하는 데 유리해졌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처방 대신 저자가 마지막으로 던진 ‘화두’를 곱씹는다면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바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지각이 있는 존재인 인류가 세균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시아노박테리아와 똑같은 길을 걸어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20억 년 전 광합성으로 산소를 내뿜어 산소가 없던 지구 대기권에 일대 격변을 초래했다. 자신이 무슨 일이 벌이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올 바른 미래를 선택하고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Something New Under The Sun』이다. 구약성경 전도서에 ‘해 아래는 새것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란 말에 대비될 정도로 현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고, 자연 세계 속 인간의 위치도 과거와 같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제목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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