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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추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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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한달여 전인 2002년 4월, 영국 BBC 인터넷판이 당시 세네갈 축구팀 감독인 브뤼노 메추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은 '메추 성공의 비결'. 무명의 아프리카팀을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출전시킨 그는 이미 세네갈의 영웅이 돼 있었다. 세네갈 축구연맹 부회장은 이 기사에서 메추의 성공비결을 의외로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는 모든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 선수와 연맹 관계자, 그리고 언론의 지적에 모두 귀를 기울인다."

"한마리 사자와 여덟마리의 양으로 이뤄진 군대와, 한마리 양과 백마리의 양으로 구성된 군대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바로 전자다." 정복자 나폴레옹이 남긴 명언 중 하나다. 리더(사자)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다. 정복자가 활약하던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뛰어난 리더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유능한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언행이나 특성에 눈을 돌렸다. 1970년대 미국의 R K 그린리프는 열가지 언행을 찾아냈다. 부하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과 동감하며 실수를 해결해준다 등…. 리더의 신체적.심리적 특징을 찾아내려는 연구도 벌어졌다. '진정한 리더는 잘 생기거나 강한 육체를 갖기보다는 부드럽고 사교적이다' '유능한 리더의 몸에선 스트레스를 이기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하는 물질(세로토닌)이 많이 분비된다' 등….

하지만 최근 조직이론에선 개인이 지닌 리더십뿐 아니라 그 지도자를 둘러싼 상황이나 폴로어십(followership.부하의 자질)도 중요하게 여긴다. 영웅도 시대와 추종자를 잘못 만나면 범부(凡夫)가 된다는 것이다.

새 한국축구팀 사령탑인 메추는 언행과 특성면에서 훌륭한 리더의 요건을 갖췄다. 그는 평소 "나는 경찰이 아니라 코치"라고 주장할 정도로 유난히 선수와의 스킨십을 강조하는 감독이다. 파란 눈에 긴 머리, 캐주얼 코트 차림에서 예술가.철학자 같은 카리스마도 느껴진다. 하지만 메추를 제2의 히딩크로 만들려면 개인의 카리스마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과 축구협회, 특히 선수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