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헌, 근대5종 세계선수권서 쾌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 31일(한국시간) 승마 경기에서 1200점 만점을 받은 이춘헌이 기뻐하고 있다. [모스크바 AP=연합]

"근대 5종 선수야말로 가장 완벽한 스포츠인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프랑스) 남작이 1912년 제5회 올림픽(스톡홀름)의 근대 5종경기 정식종목 채택 때 한 말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물론 아시아권과는 거리가 먼 종목이었다. 그런 근대 5종 경기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이춘헌(24.상무)이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은메달을 따냈다.

이춘헌은 31일 새벽(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남자부 결승에서 5596점을 획득, 리투아니아의 안드리우스(5608점)에 불과 12점 차로 뒤진 2위를 차지했다.

4종목(사격.펜싱.수영.승마)에서 종합 2위로 마지막 경기인 3km 크로스컨트리에 나선 이춘헌은 3명의 선수와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이춘헌은 골인 지점을 100m 남기고 혼신의 힘을 다한 역주로 선두에 나섰으나 30m를 남기고 안드리우스에게 다시 역전을 허용했다.

세계 랭킹 상위권이 모두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2위를 함으로써 이춘헌은 두 달 뒤 아테네올림픽에서의 메달 전망도 밝게 했다. 한국은 64년 도쿄올림픽 때 최귀승(현 국제근대5종연맹 부회장) 선수가 근대 5종 경기에 첫 출전했고, 이후 명맥이 끊어졌다가 82년 대한근대5종연맹이 창설되면서 본격적인 보급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춘헌의 성과는 초등부에서 실업까지 남녀 통틀어 345명에 불과(지난해 말 현재)하고, 실업 선수가 66명뿐인 국내의 열악한 상황에 비춰 큰 의미가 있는 쾌거다.

상무의 이승욱 감독은 "취약 종목인 수영과 펜싱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올림픽 상위 입상도 노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춘헌은 광주체고 2학년 때까지 수영을 하다 한계를 느끼고 근대 5종으로 종목을 바꾼 늦깎이다. 그러나 한체대에 입학하면서 빠른 성장을 보였고, 대학 3학년이던 2001년 문화관광부장관기 전국선수권대회 개인.단체 2관왕에 올랐다. 그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릴레이 종목에서 3위에 오르면서 자신감을 키웠다.

이춘헌은 지난해 대학 졸업 후 1년간 광주시체육회 소속으로 아시아선수권 2관왕(개인.단체)에 올랐고, 그해 12월 상무에 입대한 이후 올해 아시아선수권에서도 2관왕 2연패를 달성했다. 1m84㎝의 좋은 체격에 수영으로 다져진 기초체력을 겸비한 이춘헌은 승마와 크로스컨트리에 특히 강하다.

정영재 기자

*** 병사를 모델로…보통 닷새 치러

◇근대 5종 경기=전쟁 중인 병사가 말을 타고 물을 건너고 산을 넘고, 총과 칼을 이용해 적진을 탈출하는 상황에 맞춰진 종목이다. 유럽에서는 인기 스포츠지만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 때문에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최근 올림픽 퇴출후보 종목에 끼였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는 존속하고 이후 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보통 하루에 한 종목씩 닷새 동안 경기가 벌어진다. 경기 방식은 사격(25m 권총).수영(300m 자유영법).펜싱(에페 단판 승부).승마(장애물 넘기) 점수를 합산, 마지막 크로스컨트리 경기에서 1등이 가장 먼저 출발하고 점수 차에 따라 출발이 늦어지는 '핸디캡'을 적용한다. 따라서 크로스컨트리 1등이 최종 우승자가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