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無限의 특별 배당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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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는 피라미드식 다단계 조직 판매방식의 폐해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그러나 이 판매방식은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최근에는 갖가지 형태의 유사한 조직에 부업으로 가입하는 의사(醫師)도 생겼다는 보도다.지난달에는 국제 금융 다

단계 사기행각이 검찰에 의해 적발됐다.

내가 소정의 돈을 내고 금융 다단계 사기조직에 가입한다고 치자.4명 이상의 새 회원을 모집하면 나는 당장 가입비로 투자했던 금액 이상을 배당(配當)받는다.다시 내 밑의 4명이 각기 4명 이상의 새 회원을 모집하는 식으로 무한히 조

직을 확대해 나가게 되면 가입비가 계속 이어져 가입자들은 힘들이지 않고 앉아서 많은 배당금을 받게 된다.

다단계 금융의 사기성

여기에 사기성이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새 회원들이 무한히 불어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니와,설사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가입한다 하더라도 최하위 단계의 마지막 가입자는 더 이상 새 회원을 찾을 수 없으므로 가입비

만 날리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이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게 세상을 누리는 우리 모두를 비웃기 위해 저같은 사기술을 퍼뜨린 것은 아닐까.언젠가 바닥날 것이 뻔한 에너지를 펑펑 써대는 우리는 자연 배분방식을 어기고 자기 몫이

아닌 것을 무한정 파서 쓰려고 하지 않는가.자신은 약간의 사랑만을 투자하고 여러 상대의 진실을 훔치려는 우리의 행태는 소액의 가입비로 무한의 배당금을 받으려고 하는 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그렇다.우리의 성취라고 하는 것이 기껏해야 한 군데에 일시적으로 많이

몰린 배당금과 같다.배당금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여기저기로 굴러다닌다.'성공'또는'출세'라는 이름의 특별배당금 굴러다니기는 끝없이 계속된다.

저 금융 다단계 사기극 프로그램의 착상은 아주 그럴 듯했다.그러나 그것의 결정적 허점은 무한적 상호의지(相互依支)의 상태 속에 있는 인간을 관계가 없는 개별체로 생각하고,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다른 쪽을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다.사람은 혼자 존재할 수 없다.다른 사람,그리고 자연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사람과 사람,사람과 자연은 본래부터 다단계식으로 얽혀 있다.그러나 한 쪽이 고정적으로 최상층 계단이 되고,다른 쪽이 최하층 계단이 되는

식이 아니라 동시에 또는 찰나찰나 바꿔가면서 상하층 계단의 역을 맡는다.

한 실내 농구장의 바닥.벽.천장을 온통 유리거울조각으로 붙이고 그 안에 한개의 촛불을 켰다고 치자.모든 거울조각들은 무한대로 빛을

주고받는다.여기에서 어떤 거울이 상층계단의 주(主)가 된다거나 하층계단의 종(從)이 된다고 말할 수 없다.주종이 따로 없으면서 서로 주가 돼주고 종이 돼줄 뿐이다.

배당금을 한 쪽에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거울 조각들이 무한히

주고받는다.낱낱의 거울조각들은 한 불빛도 혼자 소유하지 않으면서 모든 거울조각들이 발산하는 특별배당금을 무한히 누린다.

主從없이 주고 받아야 금융 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사의 다단계 조직방식을'나'와'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면'가입자의 한계'라는 것이 생긴다.그러나 사람을 포함한 자연 전체를 한 뭉치로 생각하면 사기를 치거나 당하는 이가 없어진다.자연은 생로병사나 흥망성쇠로 배당금을 적절히 조정해주기 때문이다.개개의 사람과 환경을 골고루 주나 종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특별배당금을 받겠다고 꾀를 내자면 고단하다.그럴 필요도 없다.모든'나'는 본래부터 항상 그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석가와 선사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네가 바로 부처야'라는 말을 되풀이하지 않던가.

釋之鳴

〈청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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