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갈증 풀어주러 ‘찾아가는 미술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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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낮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의 경기도 성남시 서현동 사옥 7층 강당. 이 회사 직원 50여 명이 점심시간을 활용해 서울시립미술관의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 프로그램에서 제공한 한 시간짜리 서양미술사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미술사가 이현씨. ‘명작과 거장의 세계-근·현대 미술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인상파 화가 마네부터 최근 각광받는 영국의 미술가 그룹 YBA까지 주요 예술가들의 작품세계, 작품에 얽힌 일화 등을 감칠맛 나게 풀어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일반인을 전문가가 찾아가 미술 강의를 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이 인기다. 23일 미술사가 이현씨(오른쪽에 마이크 든 사람)가 NHN의 직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개념미술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Fountain)’과 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소변기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수강생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을 법한 포인트를 이씨가 찔렀다. 뒤샹이 1917년 발표한 샘은 아무런 손질을 가하지 않은 보통의 소변기에 제목·작가 서명만 써넣은 채 출품한 작품이다. 수강생들이 머뭇거렸다. “평범한 사물에 예술가가 서명한 후 전시장에 내놓으면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줘 기존의 작품 제작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이씨가 설명했다. 막연하게 샘이 혁명적인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 배경을 정확히 몰랐던 상당수 수강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술 전문가가 일반인을 찾아가 미술작품 감상법, 미술사 등을 교육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이 100회째 교실 개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날 강의는 96회째. 겨울 동안은 쉰 뒤 교실 개설이 재개되는 내년 3월 중 100회를 채우게 된다.

교실은 미술 감상 욕구는 있으나 시간 여유가 없어 미술관을 찾지 못하는 직장인, 상대적으로 예술 체험 기회가 적은 저소득 맞벌이 가정 초등학생을 위해 지난해 초 생겼다. 직장인 강좌의 경우 미술품의 경제적 측면을 살펴보는 ‘미술과 경제’,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미술관 배낭여행’ 등 26개 강좌를 준비했다. 어린이 강좌는 강의를 듣고 실제 작품도 만들어보는 형식의 8개 강좌를 마련했다. 미술사학자 노성두씨,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김윤섭씨 등 전문가들이 강의에 나섰다.

30∼40명씩 그룹을 이뤄 원하는 강의, 시간대를 정하도록 한 ‘맞춤 강좌’이기 때문인지 참가 신청이 몰렸다. 한국은행·조선호텔·삼성증권 등 10개 민간기업과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29개 기업·기관 2600명이 미술 강좌를 수강했다. 초등학생 수강자도 700명에 이르렀다. NHN은 경기도에 위치해 있지만 미술관측에 ‘간곡하게’ 찾아줄 것을 요청해 교실이 열리게 됐다.

미술관의 최정주 교육담당은 “교실을 진행해 보면 일반인들의 미술 등 문화 분야에 대한 교양 욕구가 놀랄 정도”라며 “미술 교육이 빡빡한 경제활동에서 잠시 쉴 틈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최 담당은 “이런 현실을 반영해 내년에는 택시운전사 등 미술에 관심 없어 보이는 직종 종사자들에게도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방문 프로그램들=서울문화재단·서울시향 등도 전문가가 수강자를 찾아나서는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재단은 뮤지컬 배우 남경주,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등 전문가들이 중·고교 예술 동아리를 찾아가 교육하는 ‘청소년 비전 아츠 트리(Arts-TREE)’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시향은 초등학교를 방문해 악기 연주를 교육하는 ‘오케스트라와 놀자’를 갖고 있다.

신준봉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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