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정화 함대처럼 중국해군도 해적 소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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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해적 소탕을 위해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에 파견되는 중국 함대(전함 2척, 보급함 1척)의 출항식이 하이난다오(海南島) 싼야(三亞) 해군기지에서 열린다. AP통신·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은 600년 전 명나라 영락제 때 아프리카 해역까지 원정갔던 정화(鄭和·1371~1433) 함대에 빗대 중국 해군의 소말리아 파견을 보도하고 있다. 25일 중국의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정화 함대처럼 중국 해군도 소말리아 해적 소탕전에서 큰 성과를 거둬주길 고대한다”는 네티즌의 격려가 쏟아졌다.


정화는 1405~1433년 일곱 차례에 걸쳐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인도양을 동서로 가르는 항해에 성공했다. 현재 해적 소탕전이 벌어지는 소말리아까지 갔다 왔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세계 최대 해적 집단이었던 믈라카 해적을 소탕했다. 해적들의 우두머리는 중국 광둥(廣東)성 차오저우(潮州) 출신 천쭈이(陳祖義). ‘해적왕’으로 불리던 천은 1만 명이 넘는 해적을 거느리고, 인도와 중국의 핵심 무역로였던 믈라카 해역을 무대로 활개치고 있었다. 명나라에선 황금 750만 냥을 걸고 천을 지명수배했다. 당시 명나라의 연간 재정수입이 1100만 냥이었다고 하니, 상당한 상금이었다. 해적으로 인한 국가적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1405년 7월 첫 항해에 나선 정화 함대는 크고 작은 함선 208척과 병사 2만7800명으로 구성된 초대형 선단이었다고 중국청년보 산하 주간지 『청년참고(靑年參考)』가 25일 보도했다.

기함(旗艦)은 축구장보다 더 큰 길이 150m, 폭 60m의 초대형 함선이었다. 이 배에는 정화가 들른 지역의 왕들에게 영락제가 보낸 예물과 그들이 답례품으로 준 보물이 가득해 보선(寶船·보물선)으로 불렸다. 천쭈이 해적단은 이 배를 노렸다. 1407년 아프리카 동부까지 항해를 마친 정화 함대가 인도네시아 해역에 도착했을 때 해적들이 함대를 급습했다. 천은 부하들에게 정화의 병사들이 오합지졸에 불과하고 먼바다를 항해해 전투력이 형편없을 것이라고 독려했다.

하지만 해적은 사거리가 700m에 달하는 홍의포(紅衣砲)로 무장한 정화 함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정화는 이 전투에서 해적 5000명을 수장시키고 천을 생포해 명나라로 압송했다. 이로 인해 대만해협~믈라카해협~인도양으로 이어지는 해상 교역로의 치안이 회복됐다고 『청년참고』는 전했다.

정용환 기자

◆정화=명나라 때 회족 출신 환관이자 외교관. 상선·군함으로 구성된 선단(최대 300여 척)을 이끌고 동남아시아~아라비아반도~아프리카에 이르는 30여 국을 방문했다. 이로 인해 이들 지역과 명나라 사이에 수많은 외교사절이 왕래하고 무역이 활발해졌다. 동남아 각지에서 번성한 화교(華僑)도 이때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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