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진출땐 교직 떠날 것 - 서울대 교수휴직 허용 여부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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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대에서 정.관계 진출교수에 대한 휴직허용 여부에 대한 논란이 점차 가열되고 있다.특히 12월 대선을 앞두고 주요대학 교수 상당수가 대선주자 참모로 일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논란은 대학사회에서 상당기간 큰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관계 진출 교수의 휴직이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26일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부터.국회의원과 교육공무원을 겸직할 경우에 한해 휴직을 허용하고 있던 이 법의 44조3항이 겸직가능 범위를'교육공무원이 아

닌 공무원'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이 개정안에 따라 지난달 5일 과기처장관으로 입각한 서울대 자연대 권숙일(權肅一)교수가 처음으로 휴직했다.權교수는 단과대 학장에게 휴직계를 제출,수리됨으로써 교수와 장관직을 동시에 유지하게 됐다.權교수의 휴직은 해당학과및 단과대

교수 대부분이 동의하는 가운데'매끄럽게'처리됐다.

그러나 같은달 초 사회대 경제학부 배무기(裵茂基)교수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된 뒤 휴직 의사를 밝히자 본격적인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사회대는 같은달 24일 교수총회에서 찬반투표를 거쳐“정.관계진출교수의 휴직을 허용한 개정 교육공무원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채택,선우중호(鮮于仲皓)총장에게 제출했다.

이에 앞서 정치학과 교수 11명 전원은 성명을 발표,교육공무원법 재개정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논란은 최근 열린 서울대 학장회의까지 이어져 단대별로 열띤 찬반입장을 개진하기도 했다.

휴직허용에 대한 서울대의 기류는 이.공계의 찬성입장과 인문.사회계열의 반대입장으로 엇갈리고 있다.

인문.사회계열의 교수와 학생 대부분은“교수 한명이 휴직할 경우 학사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학내에 잘못된 정치바람이 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으로 일부 교수들사이에서는 무조건 반대나 무조건 찬성보다는 전공과 무관한 정치적 진출은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이를 반영하듯 지난달 28일 裵교수의 휴직원을 받은 경제학부는 교수회의에서 치열한 논쟁을 거쳐“전공과

같은 분야로 진출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휴직에 동의하기로 결정했다.裵교수의 휴직계는 현재 총장의 결재를 남겨둔 상태다.

정.관계진출 교수의 겸직 허용에 대해 서울대와 사립대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92년'문민정부'출범이후 국회의원이나 장.차관으로 진출한 교수는 15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문민정부 첫 외무장관을 지낸 고려대 한승주(韓昇洲)교수나 연세대 출신인 안병영(安秉永)현 교육부장관등 사립대 교수 출신들은 자연스럽게 휴직했고 韓교수는 복직한 상태다.

고려대의 한 교수는“사립대의 경우 소속 교수가 정.관계로 진출하는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학교의 명예를 높인다는 측면 뿐만 아니라 연구비나 교육여건 개선사업등에서 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런 분위기 탓에 사립대에서 정.관계출신 교수들의 복직이 문제가 된 사례는 드물다.

반면 정.관계 진출이 유난히 많은 서울대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교육공무원법상의 규정 뿐만 아니라 후진을 위해 길을 터준다는 의미에서도'외도'시작과 함께 사직하는 관례가 이어져왔다.이홍구(李洪九)신한국당 고문,조순(趙淳)서울시장,한

완상(韓完相)전부총리등이 이 경우다.국회의원으로 진출한 한승수(韓昇洙),길승흠(吉昇欽)교수의 경우 법적으로 사직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던졌다.

겸직허용 논란은 기업체 이사직 겸임문제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경영대 李모 교수가 지난해 4월 단과대에 모 대기업 사외(社外)이사 겸임을 신청했으나 대학본부의 처.실장회의를 거쳐 겸직을 허용않기로 결정됐다.하지만 최근 공대가 정.관

계 뿐만 아니라 일반기업의 비상임 임원을 맡는 경우까지 겸직 허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현철 기자〉

<사진설명>

휴직허용 여부를 놓고 교수간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학생들이

게시판 앞에서 이 문제를 다룬 대학신문을 읽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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