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 국
1
겨우내 윗목에 누워 뒤척이던 고향바다
봄은 그 머리맡으로 양은대야를 끌어당기며
어젯밤 잠 설친 돌섬 젖은 이마를 만지고 있다.
2
입춘무렵 뜸잠결에 안개꽃,봄눈이 와서
포물선 물마루 끝이 하늘자락에 허물어지면
아득히 옥돔어장엔 등을 켜는 풍란 한 촉.
3
아직도 가슴에 맺힌 흉터 하나를 어쩌지 못해
세월의 뒤켠에 서서 떠난 자를 그리워하던
섬기슭 토종동백도 눈시울을 붉힌다.
4
바다가 홑이불 펴고 남녘창을 열어둔 까닭
돌아오라 사람아 저 치잣빛 수로를 저어
위미리 낮은 방파제 초록등도 켜리라.
◇시작노트
나이 탓일까,기실 타향살이보다'고향살이'가 더 외롭고 버겁다.
현무암 틈새에 뿌리를 박고 바닷바람을 견디는 토종동백처럼 나의 심신엔 고향이 새겨준 어둡고 축축한 문신으로 가득하다.
늘 상처받은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이 병적인 우수가 내 시어들에까지 물기를 끼얹는다.그래서 고향은 내 슬픔의 원천이며,슬픔은 곧바로 내 시업의 원천이기도 하다.
올따라 동백은 더 붉게 피고 껍질 벗는 봄바다에 출렁이는 옥돔비늘이 눈부시다.모처럼 내고향 위미리(爲美里)에 대해 해맑은 시 한 편 쓰려했지만 그게 맘 같지 않아서 오히려 고향에 대해 송구스럽다.
◇약력
▶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길'당선▶시집'진눈깨비''겨울반딧불',산문집'고개숙인 날들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