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보고세로읽기>빌 브란트의 사진집-억압된 꿈.광기 초현실적 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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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내 귀는

소라껍질/바다소리를 그리워한다.”

프랑스 시인이자 화가 장 콕토는 이렇게 짧은 시로 삶의 본질을 노래했다.나는 이 시를 글짓기수업 첫 시간이면 아이들에게 늘 외우게 했다.장 콕토를'장독대'라 부르며 장난치는 녀석들.

빌 브란트(1904년 영국태생)의 사진을 보면 장 콕토의 시가 생각난다.그러나 이 사진은 엄숙하고 신비스럽다.그의 부모가 러시아인이라서 슬라브족의 신비적 심성이 어린다.그러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초광각렌즈의 초현실적 시각

을 택한 것이다.

바닷가 자갈밭위에 누워 있는 거대한 귀-.대담무쌍한 클로즈업의 과장된 심층심리의 표현법은 화가 달리보다,영화'블루 벨벳'의 잘라진 귀보다 더 인상적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다.그러나 잘 빚은 초현실적 이미지는 늘 놀랍고 새롭다.영화'터미네이터2'에서 복도 바닥이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는 장면,'언더그라운드'에서 갈라진 땅덩어리가 바다로 신나게 흘러가는 마지막 장면이 그

렇다.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가던 마르케스의 소설'백년동안의 고독'과 랭보와 네루다의 경이로운 시도 생각난다.위대한 작가들은 첨예한 시대의식의 반영인 초현실주의의 세례를 깊이 받았다.도대체 초현실주의는 어디서 무엇 때문에 헤엄쳐 왔느냐

.그것은 20세기초에 마르크시즘과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바다를 건너왔다.종착지는 자유와 상상력을 통한 정신해방이다.1백년 가까운 역사속에서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팝아트의 영양소였으며 오늘날 모든 예술장르와 상업광고까지 귀신처럼 넘나든

다.

물질문명에 거센 반기를 들던 첫번째 슬로건이 순수성 회복이다.절망적인 문명으로부터 탈출해 인간 본연의 순수를 찾는 것이다.그것은'위선이란 이름의 질곡을 벗기 위한 유머'로 웃음을 선사한다.그래서 마그리트.달리의 그림을 보면 놀랍고

신비하다 못해 웃음이 나온다.

초현실주의는 또 인간 내면에 억압된 상상력.꿈.광기를 자유롭게 표현한다.노란 장미꽃들이 시궁창에 피었다고 생각해보라.한 사물이 전혀 다른 곳으로 자리바꿈하는 데페이즈망 수법을 써서 상투성을 벗겨낸다.또한 자동기술법(가능한 빨리 기

술하는 방법)으로 존재의 깊은 근원까지 파고들어 무의식의 메시지를 탐구한다.시인 김수영의 후기시도 자동기술법에 의한 초현실주의적 특성을 엿볼 수 있다.혁명이란 단어,자유와 사랑,절대를 향한 치열한 그의 시정신은 초현실주의가 꿈꾸는

완전을 향해 치닫는 부단한 자기반성과 같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금세 늙는다.타성에 젖은 삶의 태도를 돌아보고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다.초현실주의는 현실초월이 아니다.현실을 보다 깊이'자각하고,세계를 더 뚜렷이,그리고 정열을 가지고 바라보는 태도'다.생태주의와도 밀접해

절망속에서 다시 태어나려는 몸부림처럼 소중하다.

불황과 낭비로,탐욕과 비리로 휘청거리는 이 시대에 초현실주의는 그래서 여전히 유효한가. <신현림 시인>

<사진설명>

빌 브란트의 사진집'누드 투시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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