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마주치지 말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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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 06면

“차 한잔 마실까”=해고
해고의 칼바람이 불고 있는 외국계 금융회사. 직원들은 매니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쓴다. 혹시 “차 한잔 마실까”라는 상사의 말을 들을까 봐서다. 커피숍에서 해고 통보받고 회사로 돌아가면 사무실 문 앞에는 이미 개인 소지품 박스가 나와 있다. 동료와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나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불황이 낳은 新풍속

치킨집 매상 절반으로 뚝
경기도 성남에서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 “전에는 맥주 한 잔이 두 잔 되고, 치킨 한 마리가 골뱅이무침이나 오뎅국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요즘엔 치킨 한 마리에 맥주 한 잔이면 끝난다. 손님이 줄어든 건 물론이고 오는 손님들의 씀씀이도 많이 줄었다.”

회식비는 물론 종이컵도 안 줘
기업 사무실마다 종이컵이 사라져 가고 있다. 회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종이컵 사용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펜·종이 등의 비품 공급도 줄었다. 이맘때면 송년회 계획을 짜느라 부서마다 들뜨곤 했지만 올해는 조용하다. 송년회비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회사 방침이 내려온 탓이다. 덕분에 ‘더치페이’가 유행하고 있다.

캐럴송 없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며칠 안 남았는데도 거리엔 캐럴송이 들리지 않는다. 한 음반가게 주인의 말. “신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캐럴 음반을 내놓은 가수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 음반회사 관계자는 “예년에는 11월 초부터 캐럴 음반을 판매하곤 했지만, 올해는 슬픈 발라드가 대세”라고 말했다.

빌딩마다 ‘임대’ 플래카드
3년 전 경기도 신갈에 사무실 2개를 분양받은 김모씨. “월 300만원이던 임대료를 100만원으로 내렸지만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빈 사무실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서울 역삼동의 한 상가는 70%가 비어 있다. 시행사는 임차인을 구하려는 마케팅을 중단했다.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요즘엔 간판 장사, 플래카드 장사가 최고”라는 푸념도 나온다.

‘호황’ 누리는 중고품 가게
재활용품을 취급하는 ‘리싸이클시티’는 요즘 손님이 부쩍 늘었다. 사무실 밀집 업소 매출은 15~30% 증가했다. 폐업한 사무실에서 나온 집기가 이곳에 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고 가정용품은 거래가 뜸하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팔려는 사람이 없어서다. 기름값을 아끼고 충동구매를 줄이려는 주부들 사이엔 온라인 장보기가 인기다.

대리운전 피크타임 빨라져
대리운전의 피크타임은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다. 하지만 최근엔 그 시간이 밤 10시부터 12시까지로 당겨졌다. 술자리가 일찍 끝나기 때문이다. “회식을 해도 1차만 간단히 하고 집에 가는 경우가 많아요. 일거리가 줄어드니 야근도 많지 않고요. 손님은 없는데 대리기사 수는 늘어 더 힘듭니다.” 대리기사 김모씨의 하소연.

겨울 휴가는 집에서
삼성은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금요일)을 휴무일로 정해 일요일까지 25~28일 나흘간 연휴를 실시한다. 이런 식으로 노는 제조업체가 꽤 많다. 부산의 한 섬유업체는 두 달 전부터 주 4일 근무를 하고 있다. 일감이 없어서다. 직원들은 쉬는 날이 반갑지 않다. “돈 없는데 무슨 여행, 집에 있을 예정이다.” 지난해 일본으로 겨울 휴가를 다녀온 한 직장인의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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