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책에게 길을 묻다] 타블로의 아쉬운 ‘문학 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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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힙합가수 타블로(28)가 펴낸 단편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을 읽으며 마음이 무거웠다. “악문(惡文) 모음집 아니야?”싶은 수준의 문장은 차라리 모래를 씹는 맛이다. 스토리도 그랬다. 종합해 판단하자면 작품 이전이요, 습작 수준이 분명하다. 출간된 지 한 달 보름, 덜컥 베스트셀러 상위권에까지 오른 이 소설집에 대한 차분한 검증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팬들은 좔좔 꿰겠지만, 타블로는 명문 스탠퍼드대 출신이다. 최우수 성적으로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석사학위도 받았다. “학벌로 치자면 가요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말도 나돈다. 홍콩·스위스에서 자랐고 대학시절에는 연극·영화에 두루 손을 댔다는 그가 펴낸 이번 소설집은 작품 10편을 담았다.

예전에 써뒀던 영어 소설을 그가 우리말로 번역했다는데, 오랜 외국생활을 감안한다면 그 점은 일단 가상하다. 하지만 이 소설집이 정식 출판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생경한 문장의 남발 등은 학생시절 강의실에서 끝냈어야 옳았다. 그가 아낀다는 작품 ‘쉿’을 훑어보자.

“그물망에 걸려 몸을 꼬았다 풀었다하는 물고기…”(57쪽). 뭔가 좀 어색한 문장이다. “그물망에 걸려 퍼덕이는 물고기…”라고 하면 간단하지 않을까? “숨소리는 날카롭고 무섭도록 가팔랐다”(88쪽)도 억지 문장이다.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니라 수두룩하다. “컵에서 굵은 김 한줄기가 부드럽게 올라와…” “부엌 바닥에 곤두박질할 것처럼, 온몸이 나른해졌다” 등등.

실은 문장과 문장의 연결도 부실하다. 때문에 “영어 원문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는데, 갑갑한 것은 스토리다. 토막 난 이야기들이 그저 몽롱하다. 서사(내러티브)의 해체를 노린 문학 실험도 아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왜 이 소설집을 집을까? 물론 나름의 매력이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뉴욕 시절 소년 타블로의 아픔·상처가 조금씩 배어 나온다.

백인 농구선수에게 여자 친구를 빼앗긴 뒤 느끼는 지독한 상실감(‘증오 살인’), 어머니는 몸저 누워있고,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와 함께 숨어서 마약을 하는 음습한 주변부의 삶(‘쉿’), 소수계 인종의 아픔 같은 게 조금씩 느껴지는 학생 시절 학생회장 선거 패배의 아픈 기억들(‘승리의 유리잔’)등…. 하지만 그런 모티브들이 스토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도 아니다.

상식이지만 우리 문화풍토는 여과기능이 부족하다. 아니 없다. 문학이건, 미술이건 그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두루뭉술하다. 이런 주례사 비평의 황량한 풍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시장에서 많이 팔리거나, 기왕에 확인된 저자의 이름값이다. 그게 전부다. 정작 작품에 대한 포폄(褒貶)은 실종된다.

이런 비평의 원시림 속에서 타블로에 대한 지적은 가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은 그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다만 제도권 문학이 화끈한 고객 만족을 안겨주지 못해왔고, 그런 일이 누적되면서 이런 시장의 혼란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경계하는 마음일 뿐이다.

어쨌거나 좋다. 그림도 그리는 가수라서 자칭타칭 화수(畵手)도 있는 판이 아니던가. 왜 문수(文手·문인가수)가 나오지 못하겠는가? 타블로가 그 주인공이 못 될 것도 없다. 단, 지금의 역량 가지고는 안 된다. 건투를 빌 뿐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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