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78. 2차 방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2001년 당시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인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인(右)과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승수 외무장관.

2001년 2월 나는 대한체육회장 겸 KOC 위원장 3선에 성공했다. 체육회장 세 차례 연임은 내가 처음이었다.

97년 처음 체육회장이 됐을 때 정치권, 특히 국회 문공위에서 체육회장 선거가 정치판처럼 혼탁하다며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그래서 올림픽 종목, 여름 종목, 겨울 종목, 기타 종목 등 기능별로 대표를 뽑아 이들이 간접선거를 하도록 바꿨다. 모 인사가 당선 무효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단독후보 선출을 합법으로 인정, 기각했다.

이때는 IOC 위원장 선거(7월)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한국도 외환위기에서 겨우 빠져 나오는 상태여서 할 일이 매우 많았다. 엘리트체육· 학교체육·사회체육의 균형 있는 발전과 남북 교류 등도 큰 과제였다.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남북 공동성명) 1주년을 기념해 미국 워싱턴 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에서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 한승수 외무장관, 문정인 연세대 교수, 유재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위원과 함께 참석했다. 우연히 네 명이 모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선후배였다. AEI는 미국 공화당의 싱크탱크로 체니 부통령도 부시 행정부에 들어가기 전 이곳의 연구원이었다.

세미나를 끝내고 상·하원 외교위원회에 가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설명했다. 한 장관이 내게 설명하라고 해서 그렇게 한 뒤 질문도 받았다.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이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다. 상원은 무척 호기심 많은 진지한 모임이었으나 하원 외교위원회는 달랐다. 김정일에 대한 불신이 터져 나왔다. “그런 사람과 대화가 되느냐”는 등 부드럽지 않은 말들이 쏟아졌다.

귀국 직후인 6월 18일 나는 북한올림픽위원회 초청으로 방북했다. 최재승 국회 문광위원장, 이금홍 세계태권도연맹(WTF) 사무총장, 윤강로 KOC 국제부장 등 3명과 함께 갔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문제로 시끄러울 때여서 최재승 위원장의 동행이 정치적으로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래서 방북 목적을 체육으로 한정했다. 국적기 대신 중국 베이징에서 고려민항을 타고 들어갔다. 평양에 있는 북한 선수촌을 둘러봤다. 태권도전당은 상당히 컸다. 원래 서울올림픽 공동개최에 대비해 만들었다고 했다.

이때 50만 달러를 갖고 방북했다. 시드니올림픽 당시 북측으로부터 북한체육 지원 명목으로 100만 달러를 요청받았으나 시드니에서 50만 달러만 줬기 때문에 나머지를 준비한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나중에 50만 달러어치의 훈련기구와 농구장 스코어보드, 양궁장비 100세트도 지원했다.

‘퍼주기’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100원을 써서 1만원의 효과를 볼 수 있다면 써야 하는 게 스포츠 외교다.

지금이야 남북관계가 경색됐지만 당시는 공동입장에 이어 남북 단일팀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였다. 북한 스포츠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운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