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수원 이봉운翁 주변 노인들 생일잔치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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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허-.힘자랑 하던 때가 어제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늙었구먼.”

21일오전 수원시연무동 한국보훈복지공단 보훈원(원장 李吉在)에서는 올해로 백세(百歲)를 맞은 이봉운(李鳳雲)옹을 위해 할머니.할아버지등 2백여명이 마련한 장수잔치가 열렸다.

흰 수염에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고 머리엔 갓을 쓴채 잔칫상앞에 앉은 李할아버지는 유일한 혈육인 넷째아들과 며느리의 술잔을 받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지난 1898년 경북선산군도개면월림동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李옹.

李할아버지는 23세때 일제침략으로 나라를 잃자 단신으로 중국으로 망명,중국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며 28세때 부인 김연(金蓮)씨를 만나 결혼한뒤 슬하에 6형제의 자식을 두었다.그뒤 광복이 되자 고국으로 돌아와 막노동으로 생활을 이어갔

으나 6.25전쟁으로 큰아들이 군대에서 전사했고,둘째.셋째아들도 전쟁통에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이어 넷째와 다섯째 아들도 사고로 불구의 몸이 돼 서울 장애인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고 막내인 여섯째 아들도 사고로 숨져 李할아버지는 지난76년 부인과 함께 보훈원을 찾아야했다.

전몰유족으로 21년동안 보훈원에서 살던 李할아버지는 지난95년 부인 金씨마저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현재 혼자 살아오고 있다.이곳에서 李할아버지는 1백세의 나이에도 귀가 조금 들리지 않을뿐 규칙적인 생활습관으로 젊은이 못지

않은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李할아버지는 이날 그간 쌓인 모든 시름을 한꺼번에 떨쳐버리려는듯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연신 건네는 축하술잔을 마다하지 않았다. <엄태민 기자>

<사진설명>

백수(百壽)를 맞은 이봉운옹이 동료 노인들의 축하속에 잔칫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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