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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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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
원제 I, Cyborg, 케빈 워릭 지음, 정은영 옮김
김영사, 520쪽, 1만6900원

2000년 초 미국의 대표적인 컴퓨터 과학기술자 빌 조이는 머리털을 쭈뼛 서게 하는 과학 에세이를 발표했다. ‘왜 미래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 묵시록적 성격의 이 유명한 글은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각광받는 GNR(유전공학+나노 테크놀로지+로봇공학)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펼쳐 보인 경고 메시지였다.

GNR는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여는 위험한 일이라는 것. 그 때문에 인류라는 종(種)은 GNR가 탄생시킬 프랑켄슈타인 종족에게 절멸될 수도 있다는 디스토피아였다. 빌 조이는 컴퓨터업체 선 마이크로 시스템스의 대표. 따라서 기계 혐오주의자일 리 없는 그의 경고는 더욱 힘이 실렸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같은 일부 유력지들은 에세이 전문(A4용지 20장)을 게재하기까지 했다.

빌 조이가 인류 미래와 테크놀로지 사이의 함수를 놓고 밤샘 고민을 할 무렵 영국 땅에서는 그 정반대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의 저자인 케빈 워릭 레딩대 인공두뇌학과 교수가 1998년과 2002년에 실시한 생체실험이 그것이다. 그는 자기 왼쪽 팔뚝에 동전만한 실리콘 컴퓨터 칩을 삽입해 신경과 연결하는 ‘기계인간(사이보그)’수술을 자청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과 생각이 칩을 통해 컴퓨터에 전송되는 연결고리를 만든 것이다.

이 실험은 사이보그 세상을 여는 인류사적 사건. 빌 조이의 경고란 괜한 헛소리라는 것, 인간 몸과 기계가 만나서 ‘멋진 신세계’를 열 수 있다는 낙관론자의 실험이기도 했다. 2002년 실험 때 그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부인을 생체실험에 투입한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사이보그 커플.

텔레파시 교환은 물론 껴안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기록을 담고 있는 『나는 왜 사이보그가 되었는가』란 책은 별나다. 분류하자면 자기 목숨을 내놓은 생체실험의 결과를 자신의 과학적 신념과 결합한 논픽션 과학서쯤 될 법하다. 당연히 소설보다 재미있다. 사이보그 1호 시민인 워릭은 책에서 자신의 성장과정까지 털어놓는다.

1954년생으로 지미 핸드릭스의 록 음악과 오토바이에 열광하던 그는 뒤늦게 입학한 대학에서 전기통신공학과 제어시스템으로 학위를 받았다. 관심은 인간과 기계의 결합. 미래에는 기계가 인간보다 더 지능적일 수 있다는 논문도 발표했다. 그런 그는 더 이상 괴짜 취급을 받지 않는다. 권위있는 과학자들을 초대하는 영국 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시즌 강연에 선 경력이 그걸 입증한다.

책의 가운데 부분은 자신의 생체실험 결과에 대한 치밀한 보고서. 사진 자료까지 곁들인 이 책에서 그는 목숨을 담보한 사이보그 수술 당시의 공포감까지 털어놓았다. 미래에 대한 워릭의 생각은 간단하다. 인류 미래는 기계와 인간의 파워게임 대신 사이보그 세상이라고 전망한다. 사이보그 세상은 지능이 뛰어나고, 의학적으로 쾌적하며 문화적인 성격이 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통념을 뒤흔드는 발상과 전망이 어리둥절하기까지 하지만 매우 진지한 문제제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워릭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빌 조이라면 그를 미치광이 취급을 하겠지만, 열렬한 동조자도 있겠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공의 혼혈을 찬양하며, 그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하는 여성 생물학자 도너 해러웨이가 그 중 한명이 아닐까 싶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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