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은 수능 영어도 봐 이중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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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2012년 도입하는 ‘한국형 토플’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은 연간 10여만 명이 응시하는 해외 영어시험(토익·토플) 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다. 고교만 나와도 영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바꾸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의지도 담겨 있다.

평가시험은 대학생과 직장인이 주로 보게 될 1급과 고교생용인 2~3급으로 나뉜다. 특히 2015학년도까지 수능 영어시험이 현행처럼 유지돼 2012년부터 평가시험과 수능 두 시험이 병존하게 된다. 초등학교 영어수업 시간도 2010년부터 한 시간씩 늘어나고 중·고교의 영어 이동수업도 본격화된다. 초·중·고생 모두 영어 공부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평가시험 어떻게 치르나=1급은 대학생들이 유학이나 대학원 진학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험이다. 직장인 등 일반인들의 시험도 1급에 해당한다. 유학은 물론 취업을 위해 토익과 토플을 보는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게 교과부 계획이다. 1급 시험은 현행 토익이나 토플과 유사하게 점수를 주는 방식을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평가시험을 미국이나 유럽 대학들이 인증할지는 불투명하다.


고교생용 2, 3급 시험은 급수만 주어지거나 ‘통과(pass) 또는 실패(fail)’만 알려준다. 교과부 오석환 영어교육강화추진팀장은 “2급은 영어가 많이 활용되는 학과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수준, 3급은 실용영어를 쓰는 학과의 요구 수준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교생도 1~3급 중 어느 등급이나 응시할 수 있다. 높은 등급을 따려고 초등생 때부터 시험준비에 매달리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교과부는 수능 영어 응시 인원(올해 55만2000여 명)을 감안해 50만 명이 보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5만 명씩 10번 이상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매달 연중으로 시험이 치러지는 셈이다.

대학들이 평가시험 점수를 입시에 반영할 가능성도 있다. 안병만 장관은 “2012학년도엔 대학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많이 도입할 것으로 예상돼 등급을 요구하는 곳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어 부담이 문제=대학들이 1~3등급으로 구분되는 평가시험 성적을 별도로 요구한다면 학생들은 수능 영어와 평가시험을 모두 대비해야 해 이중 부담이 될 수 있다.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 만든 시험이 또 다른 대입용 시험이 돼 사교육시장만 키우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고교생들이 1급을 따려고 시험 준비에 매달리면 학업 부담만 커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평가시험 영역 중 ‘쓰기’ 영역은 학교에서 대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 장관은 “영어를 해보니 마지막까지 괴롭히는 게 쓰기였다”며 “공교육에서 배우는 정도에서 출제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중·고교에서 가르치는 실용 영어는 듣기와 말하기에 치중하고 있다. 서울대 이병민 영어교육과 교수는 “일일이 지도해야 하는 말하기·쓰기 교육은 학생 수를 고려할 때 시행이 쉽지 않아 사교육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초·중·고 교실의 변화=초등 3~6학년의 영어 수업시간은 2010년부터 주당 한 시간씩 늘어난다. 초등 3, 4학년은 영어 수업시간이 주당 한 시간에서 2010년부터 두 시간으로, 초등 5~6학년은 주당 두 시간에서 2011년부터 세 시간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중·고교에서 수준별 이동수업이 확대됨에 따라 부족한 교사 수를 메우기 위해 내년부터 영어회화 전문 강사제가 도입된다. 초·중등 영어교사 자격증 소지자 가운데 선발하며, 일부 시·도에서는 교사 자격증 미소지자도 교단에 설 수 있다. 선발 규모는 초등에서 최대 4000명 선이다. 교과부는 내년 하반기까지 시·도 교육청별 채용을 마치고 2010년부터 배치할 계획이다. 

강홍준·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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