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도둑들' 스탠리 코렌 著 - 수면부족한 사람들이 끼친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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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86년 3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原電)사고.어린이 2백50만명을 포함해 1천7백만명이 피해를 보았다.그런데 이 참사(慘事)에 원자로 통제관들의 수면부족이 끼어들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캐나다 신경심리학자 스탠리 코렌의'잠 도둑들'(황금가지刊)은 부족한 잠이 인류에 미친 해악과 부작용을 파헤쳐 흥미롭다.'체르노빌'만 해도 몇차례 위험징후가 있었으나 지나친 과로로 잠을 못 잔 관계자들이 비상 냉각시스템을 얼떨결에

꺼버린데서 발생했다고 한다.같은해 1월 이륙중 폭발한 우주선 챌린저호 사건도 무리한 일정으로'잠빚'을 진 사람들의 실수가 빚은 비극이었다는 설명이다.

1분 1초가 아깝게 움직이는 현대인들.출근전부터 학원가랴,운동하랴 정신이 없다.심할 때는 퇴근 후에도 일감을 안방까지 들고온다.남보다 앞서가려면 열심히 뛰어야하고 그러다보니 잠자는 시간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같은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과학적 사례와 통계를 들어가며 일일이 반박하고 있다.잠자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현대인들의 통념에도 도전장을 들이댄다.

잠을 둘러싼 대표적 오해는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줄일수 있다는 생각.그러나 저자는 최소한 7시간반의 숙면을 요구한다.그렇지 않으면 정신.신체.감정등 모든 면에서 상황이 악화되고 생활마저 엉망진창이 된다는 것.예컨대 지난 88년 한

햇동안 미국에서만도 잠 부족으로 2만4천여명이 숨지고 2백47만명이 상해를 입었다고.돈으로 치면 5백60억달러(약 47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액수다.

인간의 수면을 결정적으로 단축한 물건은 전구(電球).1913년 텅스텐 필라멘트가 발명되면서 밤의 어둠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일의 연장을 위해 잠자는 시간을 줄였다.이전만해도 매일 9시간 정도의 수면을 즐겼다고.오랜 잠은 게으름뱅이의 전유물이라는 편견도 생겨났다.

곧이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가 도입되고,오늘날에는 인터넷과 컴퓨터통신이 활개를 펴면서 사람들의 잠은 야금야금'도둑맞게'됐다.1백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일어난 놀라운 일.

이같이 급속한 사회환경 변화로 하루종일 커피를 훌쩍이는 직장인,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조는 학생등'수면부족 증후군 환자'가 양산되고 말았다.

저자는 결론적으로“잠을 적게 자는 사람은 야심가가 아니라 주변에 폐를 끼치는 위험인물”이라며“졸음운전도 음주운전처럼 범죄행위로 규정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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