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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연극계 ‘장르 이기주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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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예술극장(옛 문예회관)이 공연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극장을 ‘무용중심극장’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 연극계가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16일 연극인 100명이 무용중심극장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극작가 이강백·윤대성, 연출가 손진책·이윤택·심재찬, 프로듀서 윤호진·박명성, 배우 윤문식·김성녀, 평론가 김윤철·김방옥 등 연극계 거물급 인사들이 동참했다.

아르코예술극장의 무용 전용에 대해선 사실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건 연극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현재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무용가 혹은 안무가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에 대한 걱정이다. 발레·현대무용·한국무용·전통춤 등을 총망라해도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그 밖에 이름은 없지만 유망한 신예 안무가 작품 몇 개 정도가 가능할 터다. 그래도 1년 내내 수준 높은 무용 공연이 이어지기엔 무리가 있는 게 현실이다. 행여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실력 없는 무용과 교수들의 발표회장으로, 그래서 일반 관객은 외면한 채 동원된 제자들의 출석 체크장으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무용 전용관에 대한 우려는 바로 이 부분이다.

그래도 예술이란 공간이 마련돼야 발전한다. 인프라가 구축되면 소프트웨어가 충실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지금껏 국내엔 ‘무용 전용관’이 없었다. 무용계로선 숙원 사업이었다. “그래 한번 맘껏 노십시오. 지켜보겠습니다. 그런데 영 아니면 다시 원점으로 돌리겠습니다”라는 게 아르코예술극장을 무용중심극장으로 규정한 문화부의 생각일 게다.

거기에 연극계가 반대하는 것이다. 반대 논리는 이렇다. “문화적 흐름, 관객의 동향, 창작자들의 성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해져야 하는 공연장을 일방적인 정책에 의해 특정 장르로 국한시키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다.”

하지만 같은 논리라면 명동예술극장이, 대학로 복합문화공간이 연극 전용관이 되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 왜 그것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 것이 생길 땐 짐짓 모른 척 하다가 남에게 빼앗기자 갑자기 펄펄 뛰는 건, 품격 있는 태도라 할 수 없다. 성명서엔 “작금의 현실이 장르간 이기주의를 부추긴다”고 돼 있다. 장르 이기주의를 부채질하는 건 연극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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