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생존의대변혁>上. 몸살 앓는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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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박용오(朴容旿)두산그룹 회장은 지방공장이나 사업장을 돌며 “변해야 산다”고 강조한다.

3년 연속 적자로 수렁에 빠진 그룹을 살리기 위해선 과감한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朴회장의 주장이다.

올해 두산그룹의 목표는 몸집을 최소화하는 이른바'다운사이징'.두산은 지난해말 영등포 OB공장을 1천1백42억원을 받고 서울시에 매각한 것을 비롯,한국네슬레.한국3M.한국코닥의 지분등 3천3백20억원어치의 주식과 부동산을 처분했다.

올해도 총자산(6조4천2백억원)의 10%를 뚝 잘라 매각,이 돈으로 차입금을 상환해 현재 5백%에 달하는 부채비율을 연말에는 3백50%까지 떨어뜨릴 계획이다.

서울 여의도 LG전자 본사에서 자동차로 2시간 남짓 걸리는 LG전자 평택공장.

95년까지만 해도 활기에 넘쳤던 이 공장은 요즘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동안 CD롬.대화형 CD,3차원 게임기인 3DO등 멀티미디어기기 생산기지의 역할을 맡아왔던 이 공장은 그룹 전체로 봐도 21세기 선두주자였다.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일부 품목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것.

특히 3DO사업은 미국 컨설팅업체에 용역을 준 결과'사업전망이 어둡다'는 연구보고서까지 나왔고 결국 미국 3DO사와 공동으로 추진했던 게임기사업은 올해부터 중단했다.

회사측은 94년 6월 1천만달러를 들여 인수한 미국 3DO사의 지분 3.04%도 매각을 추진중이다.

사업구조조정을 위해 몸살을 앓는 현장들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사업구조조정은 현재▶한계.적자사업의 정리▶고부가가치사업의 과감한 진출▶부동산.주식등 자산처분▶해외투자 가속화▶임원 축소및 인력 감축▶임금 인상 자제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흐름은 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가시화된 것이지만 올들어서는 훨씬 큰 폭으로,또 강도높게 추진되고 있다.과거의 구조조정이 다소 구호와 형식에 그쳤다면 이제는 실질적인 '개혁'이 이뤄지고 있다.뼈와 살을 과감

히 도려내는 대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본지가 국내 30대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4개그룹을 제외한 전 그룹이 구조조정을 이미 추진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주요 그룹들의 과감한 사업구조조정은 무엇보다 고비용.저효율로 요약되는 산업체질의 취약성으로 인해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본지 조사에 따르면 수출부진과 내수침체로 지난해 주요 그룹의 경영 성적은 아주 나빴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그룹은 당초 지난해 매출목표를 74조원으로 잡았으나 실적은 67조원 선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삼성그룹도 75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적은 73조원에 머물렀다.

한진그룹은 환차손등 외부 요인까지 겹쳐 95년 약2천억원 흑자에서 지난해엔 1천5백억원의 적자로 반전됐고 금호그룹도 지난해 5백여억원의 적자를 냈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외형도 커지고 이윤도 높은 이른바 한국의'고이윤.고매출업종'은 75년 7개에서 85년 4개로 줄어든데 이어 95년엔 2개로 감소했다.

반면 저이윤.저매출형은 85년 섬유뿐이었으나 섬유,고무.플라스틱등 6개 업종으로 늘어났다.

많은 재계 관계자들이“구조조정은 이제'생존을 위한 자구책'이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요 기업들은 현재의 경영난이 단순한 경기순환적 측면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본격적인 구조조정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김승연(金昇淵)한화그룹 회장은 지난해말“그동안 개혁이 완전히 구호와 형식에 그친 실패작”이라며“97년을 21세기형 사업구조 조정에 초점을 맞춘'실질적인 개혁의 해'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화는 반도체사업과 위성통신사업에 그룹역량을 총동원키로 하고 현재 미국.영국등지에 비메모리반도체공장을 짓기 위한 시장조사팀을 파견했다.

이종규(李鍾奎)쌍용자동차 사장은 최근“경영정상화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서울도곡동 사옥을 포함한 부동산과 채권,각종 회원권을 모두 처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쌍용은 지난해 양회의 순이익이 전년의 10분의1로 격감한 것을 비롯,그룹 전체로 볼때 적자를 냈다.'불황은 없다'는 말을 들어온 5대 그룹들도 사업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달초 도쿄(東京)에서 이건희(李健熙)회장 주재로 '첨단기술전략회의'를 열고 9개 첨단전자분야에 진출키로 했다.

삼성은 또 2000년까지 2백54개 부품및 67개 설비국산화를 추진,30억달러의 수입대체효과를 거두기로 했다.

'1분기 배 끝머리 엔진 부품,2분기 중형 엔진 부품및 중대형 굴삭기 크레인 부품,4분기 철구조물'-.

현대중공업이 중소기업에 이양키로 한 사업들이다.회사 측은 이들을 포함,총 12개 사업(매출 규모 4백17억3천만원)을 올해중에 이양할 계획이다.

이건희 삼성회장의 다음과 같은 말은'대변혁시대'에 우리기업이 나아갈 목표를 시사해준다.

“21세기에 맞는 첨단산업으로 변신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앞으로 3~5년내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놓지 않으면 이류회사로 전락하는 수밖에 없다.” 〈특별취재팀〉

<사진설명>

두산그룹이 사업구조 조정을 위해 지난해말 서울시에 1천1백42억원에

매각한 OB맥주 영등포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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