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종교에묻는다>목사도 건물도 없는 교회 10년 이끈 길희성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우리 교회는 분파를 거듭하면서 교파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우리 교회'만을 강조하다 보니 사회의 어둠을 밝히고 부패를 방지해야 하는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도 크게 퇴색되었다.특히 개신교에서 성직자 중심.성장위주.교파주의로 운영되

다 보니 전반적인 흐름은 실천신앙.성서원리 존중.만인사제등을 외치던 종교개혁의 기본 정신과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들어 아예 건물을 갖지 않는 교회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기존 교단에 청량제로 작용하고 있다.

길희성 서강대교수(사진)와 한완상 방송통신대 총장등 4명이 10년전 설립한 새길교회도 이런 교계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교파도,교회건물도,교직자도 없는 실험교회다.철저히 평신도 중심으로 운영되는 열린 교회다.목

사가 없기 때문에 길교수등 종교학자 4명이 10년동안 한달에 한번꼴로 번갈아 설교를 맡고 있다.

길교수는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반기를 들던 종교개혁 당시의 정신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개신교 현실에 대해 길교수의 진단은“교회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교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새길교회가 설립되던 87년 3월은 6.29선언을 몇달 앞둔 시점으로 민주화시위가 한창 열기를 뿜던 때였다.당시 기성 교회들의 민주화 노력에 대한 반성 앞에서는 번질번질한 대형 교회건물이 오히려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설립 초기 4명이던 신도가 지금은 1백20명으로 늘어났다.양적 팽창에 젖은 기존 교회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새길교회로서는 의미가 크다.제도권 밖에서 교회와 사회의 정화를 꾀한다는 당초 의도가 서서히 힘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

지금도 예배는 강남의 청소년회관 강당을 빌려서 보며 사무실도 12평짜리 오피스텔이 고작이다.교회 일도 여러 신도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길교수가 교수 신분으로 이 실험교회에 애착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바로 실천종교의 실현이다.“기독교 교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정신 자체에 충실해야 한다.그런데도 현실적으로는 신앙과 삶,사회와 교회가 따로 노는 이중적 괴리가 생기고 있

다.그 때문에 교회가 번성해도 사회적 양심세력으로 성장하지는 못한다.”지난 95년 실시한 전국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종교인 비율은 10년전 42.53%에서 51.14%로 크게 높아졌다.종교가 사회정화에 충실했다면 아마

도 지금같은 혼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앙을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삼으면 자아와 사회를 개량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종교인들에게는 자연인으로서의 욕구를 어느 정도 부정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섬김받는 교회에서 섬기는 교회로,닫힌 교회에서 열린 교회로,쌓아올

리는 교회에서 나눠주는 교회로'라는 이 교회의 창립취지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정명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