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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프라를세우자>21. 파주출판단지 구상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박기봉 한국출판협동조합이사장은 올초 일본 가도가와(角川)문고에서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새롭다.일본의 중급 출판사에 불과했지만 반품책을 전자동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에 놀랐다.반품은 그만두고 신간배송도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하고,영세한 도

매상들이 뒤엉킨 우리의 유통현실이 새삼 부끄러웠다.우리가'세계 10대 출판강국'이라는 수사(修辭)조차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문화입국의 가장 든든한 뿌리라고 모두가 인정하면서도 인프라에선 다른 어떤 분야보다 뒤떨어진 한국 출판계.도서관 숫자,도서구입 예산,국민 독서량등'소비적'측면은 차치하더라도 출판사 규모나 유통조직,그리고 인쇄.배본등'생산적'측면에서

10여년전보다 크게 나아진 바가 없다.구멍가게식 영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이같이 낙후된 현실을 마치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단번에 일으켜세우려는'혁명적'조치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바로 지난 89년 출판인 몇몇이 뜻을 모아 구상한 대단위 출판단지 조성이 그것.빠르면 오는 5월 하순 기공식 테이프

커팅이 거행될 예정이다.

서울 성산대교 부근에서 시작되는 자유로를 타고 달리다 일산신도시를 지나 5분정도 더 올라가면 오른쪽에 높이 1백93의 나지막한 심학산이 나온다.

이곳에서 한강쪽으로 48만여평의 넓은 땅에 출판관계자들이 9년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가 들어선다.

정확한 행정명칭은 경기도파주시교하면문발리.자유로 제방을 건설하면서 부산물로 생긴 폐천부지에 21세기 문화전쟁의 전초기지가 세워지는 것.

우선 단지건설에 필요한 행정절차가 거의 종착점에 다가섰다.지난해 12월 수도권정비위원회 소속 16개 부처 결의로 단지내 30만평이 수도권 성장관리권역내 공업지역으로 지정됐다.파주단지협동조합측은 가장 중요한 공업지역 지정이 끝나 앞

으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단지개발은 크게 2단계로 나뉜다.99년말 완료예정인 1단계 총23만평에는 단지 핵심시설인 출판사.인쇄소.제본소.유통회사등 모두 5백여사가 입주할 계획이다.출판제작 전과정이 한곳에서 이뤄지기는 세계적으로 전례(前例)가 없는 일.그만

큼 제작.물류비가 줄어들면서 산업구조가 합리화된다.조합측은 2000년을 기준으로 생산.물류비가 각각 95년 대비 30%정도 절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돈으로는 거의 2조원에 육박하는 액수.

아울러 컨벤션센터.문화산업박물관.작가의 집.번역가의 집.정보센터.교육시설등이 모인 복합문화센터가 5천4백여평에 들어선다.무색무취의 공장지대가 아닌 사람이 살아있는 문화공간을 세우자는 취지에서다.

2단계는 2000년 이후로 넘어간다.컴퓨터그래픽.애니메이션.광고.공공 스튜디오.녹음소.필름현상소.만화제작자.팬시상품업체.패션연구소등 주로 영상관련 업체가 결집한다.전통적 출판수단인 활자매체와 고부가 산업인 영상매체가 한곳에 모여

명실상부한 문화중심지로 비상(飛翔)한다는 구상.

공사는 시범지구부터 시작된다.전체 단지의 성공적 조성을 위해 입주가 시급한 회사를 대상으로 개성있는 건축및 가로(街路)를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확정할 계획.출자사들에 대한 용지분양은 내년 상반기중 이뤄져 중소출판사들의 '자기집'

짓기는 내년 하반기께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파주출판단지는 첫구상 이후 만8년동안의 각종 난관을 대략 훑어보면 앞으로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한때 3백30여사에 달했던 조합원수가 현재 2백50여사로 줄어들었다.오랜 시간을 끌면서 중도에 많은 회사들이“지나치게 이상적이다”“기다리다 지쳤다”“되면 믿겠다”는 식으로 이탈했다.

입지(立地)도 처음에는 일산신도시가 거론됐다.그러나 땅값을 놓고 토지공사와 조합측이 이견을 보여 결국 지난 94년 현위치로 결정됐다.정부 또한 95년 착공을 약속했지만 올해 첫삽이 올라가도 2년가량 지연된 셈.그래서 아직도 회의적

인 눈초리가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조합측은“부지 자체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에 들어 당국과 협의를 이끌어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며“일단 착공에 들어가면 그동안 빠져나갔던 회사들의 재참여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과정에 도사린 가장 큰 변수는 역시 토지분양가.정부산업단지로 지정되면 지난해 10월 재정경제원이 발표한'국가경쟁력 10% 높이기'조치에 따라 분양가 인하.전력시설비 면제등의 혜택을 받아 일단 긍정적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나춘호회장은“실제로 자기집이 필요한 소형출판사들이 자금 부족으로 입주를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정부의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호 기자>

<사진설명>

파주 출판문화산업단지가 들어설 경기도파주시교하면문발리 일대.저 멀리

심학산이 보인다.자유로 폐천부지인 이곳 48만여평에

출판사.인쇄소.유통센터등이 들어서며 21세기 한국문화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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