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세계 생명과학계 놀라게 한 시골 처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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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5년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일까. 27일 경남 진주에 있는 경상대가 마련한 기자회견장. 이 자리의 주인공인 장호희(張顥曦.27)씨는 심한 감기에 목이 잠겨 있었다.

경상대 생화학과 이상열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과정(2년차)을 밟고 있는 張씨는 고향이 경남 고성인 '시골 처녀'다. 이 처녀가 세계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생명과학 전문학술지 '셀(Cell)' 6월호에 李교수와 함께 자신의 논문을 당당하게 게재한 것이다. 한국 연구진이 주축이 돼 셀지에 게재한 네번째 논문이다.

張씨의 논문은 '질병과 스트레스에 대한 생체방어 조절 메커니즘의 규명'에 관한 것이다. 체내에 존재하는 '퍼록시레독신'이라는 물질이 평소에는 몸에 해로운 활성 산소를 제거하는 기능을 하지만, 질병과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다량으로 만들어져 몸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 결과를 이용하면 이 물질의 양에 따라 노인성 질환이나 각종 암에 걸려 있을 가능성을 알 수 있다. 張씨는 이미 질병 진단법에 대한 특허 출원을 마쳤다.

張씨는 "석사과정에 입학한 1999년에 아이디어를 얻어 지난 5년간 이 연구에만 매달렸다"며 "다른 연구팀에서 아이디어를 눈치챌까봐 석사 논문은 다른 주제를 택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실험을 완성하기 위해 석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과정에 들어가지 않고 2년을 더 연구원으로 일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면 수업을 들어야 하는 등 연구에 몰두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도 멀리했다.

張씨가 연구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경상대 생화학과 3학년 때 졸업실험 주제를 정하면서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고 등록금과 수업료를 마련하기 위해 2년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과외도 열심히 했다.

"논문이 나오기까지 1년반은 오전 2~3시 퇴근이 다반사였어요. 고등학교 때 이 정도로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충분히 들어갔을 것 같아요. 후회는 없어요. 시설과 연구환경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거든요. 결혼은 30대 중반 이후에나 생각해 볼래요. 지금은 실험이 좋아요." 張씨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도 학교나 연구소에 남아 실험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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