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한국이 중국을 공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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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마트료슈카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목각 농부(農婦)인형이다. 인형 안에 인형이 들어 있고 그 안에 또 인형이 들어 있고, 그 안에 또 인형이 들어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이라는 마트료슈카 하나를 한국에 건넸다. 미군 1개여단 이라크 차출이라는 가장 큰 인형의 배 속에서 미군 감축이라는 인형이 나왔다. 미군 감축 인형에서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라는 인형이 나왔다.

주한미군 1개 여단을 이라크에 배치한다는 것은 미군 3600명 곱하기 그들이 가진 장비만큼의 산술적인 전력감소를 의미한다. 심리적인 요소 말고는 심각한 대북 억지력의 공백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두번째로 나온 마트료슈카는 제법 심각한 것이다. 붙박이로 주둔하는 지상군을 크게 줄이고 해군과 공군의 첨단 병기와 장거리 수송능력으로 전체적인 전쟁능력을 유지한다는 구상이다.

*** 미국측 발표 갈수록 태산

두번째 마트료슈카가 좀 수상쩍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거기서 나온 세번째 마트료슈카는 주한미군의 역할과 활동무대를 동북아 지역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다. 주한미군뿐 아니다. 한.미연합군의 틀 안에서 한국군도 동북아시아 지역분쟁에 참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미연합사 참모장 찰스 캠벨이 기자들과의 간담에서 한국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는 한.미연합군이 이 지역의 인도주의적 작전이나 동북아의 평화유지 작전에도 투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문제로 전쟁을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한국군은 중국군을 공격해야 한다. 일본과 중국이 댜오위다오(釣魚島)/센카쿠(尖閣)제도 분쟁으로 전쟁을 하고 미군이 개입하는 경우에도 한국은 제3자의 입장에 머물 수가 없을 것이다.

미국의 부시 정부가 해외주둔 미군을 첨단 무기를 갖춘 신속기동군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전면적으로 재배치하는 전략(GPR)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감축도 예상돼 왔다. 이라크사태가 주한미군 감축을 앞당긴 것이다. 그러나 언제, 누가 한.미연합군의 동북아 지역분쟁 개입을 논의하고 결정한 것인가. 한반도 분쟁 재발, 더 쉽게 말하면 북한의 공격으로 한국의 안전이 위험해지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일본.괌에 있는 미군이 개입해 한국군과 함께 북한의 침략을 격퇴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군의 역할이다. 그러나 캠벨이 밝힌 새 전략구도는 미군이 개입하는 한반도 밖의 분쟁에 한국군이 투입되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쟁으로 발전할 규모의 동북아 분쟁이라면 미국과 일본과 중국의 전쟁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강대국들의 전쟁에 한국이 끼어드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것은 미사일을 든 고래들의 싸움에 새우가 부엌칼 들고 나서는 꼴이다. 동맹관계인 이상 미군이 개입하는 전쟁에 한국군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은 논의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결론은 반드시 강대국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 한국의 처지, 통일되기 전에는 남북한의 대치상태를 전제로 내려야 한다.

*** 국방부·NSC는 뭘 하고 있나

그런데 논의는 고사하고 어떻게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한미연합사 참모장이 불쑥 한국군의 한반도 밖 분쟁 개입의 길을 여는 전략을 밝히는가. 주한미군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출동하는 것만 해도 민감한 문제다. 미군기지가 상대방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 때 나토 동맹국인 터키가 미국에 공군기지 사용을 허락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북한과 중국은 이미 주한미군 전력의 첨단화 계획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한.미연합군이 역내의 인도주의적 작전이나 동북아 평화유지 작전에도 투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캠벨의 발언에서 '인도주의적 작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북아 평화유지 작전'은 무엇인가. '한.미연합군'에 한국군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국방부와 국가안보회의(NSC)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부는 즉각 캠벨 발언의 배경을 밝히라. 한.미 간에 한국군을 한국 밖의 분쟁에 동원하는 합의는 안 된다. 우리 안보에 관한 한.미 간 대화 빈곤, 협의 부족이 불안하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 바로잡습니다

5월 28일자 27면 '김영희 칼럼'에서 중국과 일본이 "난사(南沙)군도 분쟁으로 전쟁을 하고"를 "댜오위다오(釣魚島)/센카쿠(尖閣)제도 분쟁으로 전쟁을 하고"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