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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브렌델, ‘사색의 연주’ 한 시대를 접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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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두 번의 무대만 남았다. 금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하나로 꼽혔던 알프레드 브렌델(77)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미국·영국·독일 등에서 고별 순회 연주를 한 그는 17·18일 오스트리아 빈의 뮤직훼라인 홀에서 마지막으로 무대에 선다.

빈 필하모닉(지휘 찰스 매커라스)과 함께 이틀 연속 연주하는 곡목은 모차르트의 협주곡 9번. ‘Jeunehomme(젊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건강 이상도, 부상도 아닌 “때가 됐다”며 떠나는 피아니스트의 은유적인 선곡이다. 올해는 그가 데뷔한 지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브렌델은 다작의 피아니스트였다. 유고슬라비아 태생으로 17세에 첫 독주회를 열고 이듬해에 부조니 콩쿠르에 입상하며 일약 스타가 된 후 수많은 음반을 쏟아내며 끊임없이 무대에 올랐다. 1960년대에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을 피아니스트 중 최초로 녹음했고, 96년 세 번째 베토벤 전집 세트를 내놔 클래식 팬들을 놀라게 했다. 30여 년 동안 만든 음반이 120개가 넘는다. 미국 카네기홀에서 3주 동안 6번, 매회 다른 프로그램으로 연 연주회 또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2005년 8월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 참가한 브렌델이 공연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그는 18일 빈에서 마지막 연주를 한다. [AP]


◆내한 없이 은퇴=그의 은퇴는 한국 팬들에게 특히 아쉽다. 한번도 한국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그는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3년에 한 번 정도 일본에서 연주했다. 그는 “서른 중반 이후 먼 나라는 되도록 가지 않기로 했다”며 활동 반경을 좁혔다. 국내 공연 기획사의 내한 제의 또한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없다”며 번번이 거절했다.

은퇴의 아쉬움은 음반·서적 분야를 움직이고 있다. 유럽의 음반사 브릴리언트 클래식은 58~70년의 녹음을 모아 35장짜리 CD 세트를 최근 내놨다. ‘은퇴 작품’인 모차르트의 9번 협주곡이 첫 번째 CD에 들어 있다. 한국에 수입된 분량은 매진됐다.

그가 쓴 음악 에세이 4권과 시집 2권 또한 미국·유럽에서 개정판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브렌델은 “문학은 내 음악의 원천”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가진 시카고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을 때는 문학인·철학자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한 시대의 끝맺음=피아니스트 김주영 씨는 “브렌델의 은퇴는 음악계 한 시대의 마지막 장면이 될 것” 이라고 풀이했다.

브렌델이 아르투르 미켈란젤리(1920∼95), 글렌 굴드(1932∼82), 마르타 아르헤리치(66), 마우리치오 폴리니(66) 등과 함께 20세기 피아니스트의 맥을 이어가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녹음 기술의 발전, 연주회의 대형화 등에 따라 음색이 화려하고 기교가 좋은 피아니스트가 늘어났다. 하지만 이달 브렌델의 은퇴로 사색과 고민을 바탕으로 하는 독특한 피아니스트를 다시 만나는 것은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김호정 기자

피아니스트 브렌델은

1931년 유고슬라비아 태생.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대신 스스로 작품과 문헌을 찾아가며 공부한 이력으로 독특한 음악 세계를 이뤘다. 작곡가의 의도를 면밀히 파악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주, 작곡가·음악비평가인 쇤베르크로부터 “가장 현학적인 연주”라는 평을 들었다. 영국의 명예기사 작위, 옥스퍼드·런던·서섹스 대학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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