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되게 굴어도 밉지 않은, 천상 코미디 배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2호 03면

차태현(32) 주연의 영화와 드라마가 동시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2월 4일 개봉한 ‘과속 스캔들’은 첫 주 70만 명을 동원하며 예매 1위를 달리고 있다. 11월 19일부터 방영되고 있는 MBC ‘종합병원2’ 역시 수·목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스크린에서나 브라운관에서나, 그로선 오랜만의 흥행이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투가이즈’ 등에서 편안한 웃음을 주는 넉살 좋고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어왔지만, 지난해 드라마 ‘꽃 찾으러 왔단다’와 영화 ‘복면달호’ ‘바보’가 연달아 부진하면서 연기 변신 주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영화로 드라마로 흥행 쌍끌이 중인 차태현

그러나 이번 작품들은 모두 능글맞은 듯 어수룩한, 전형적인 ‘차태현식 코미디’를 이어가면서도 한층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극을 이끌며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고 있다.
영화 ‘과속 스캔들’은 개봉 전 별달리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신예 박보영의 연기와 노래, 아역 왕석현의 천진난만한 매력이 더해져 시사회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돌 스타 출신의 36세 라디오 DJ에게 사연을 보내던 21세 미혼모 청취자가 어느 날 다섯 살 난 아들을 데리고 나타난다. 이른바 ‘과속’으로 탄생한 철없는 3대인 것이다. 처음엔 연예인 생활 끝장날까 전전긍긍하던 차태현은 점차, “알아서 잘 커온 것만도 감지덕지”인 가수 지망생 딸의 꿈을 키워주고 손자에게 정을 주면서 “책임감 있는 가장의 이미지”로 변신하게 된다.

본인도 인정하듯, ‘과속 스캔들’의 주인공 이력이 차태현을 빼닮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인기 절정에서 잠시 꺾인 스타”이면서, 한때 가수로 데뷔해 “2집 망하고 노래 끊은 지 좀 됐고”, 라디오 DJ로서 현상 유지하는 상황조차 ‘미스터 라디오’ 등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현실과 일치한다. 차태현은 “너무 비슷한 설정이라 내키지 않았던 면도 있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잘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단다.

첫사랑과 결혼해 얼마 전 아들을 낳고 지금까지 스캔들 한 번 없던 점에서만은 영화와 전혀 다른 그는 “언젠가 아이 아버지 역을 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는 좀 일찍 왔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솔직히 말해 어두운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밝은 드라마나 영화를 하는 것이 나답다”고 털어놨다.

차태현은 왠지 못되게 굴어도 밉지 않은, 최악의 처지에서도 행복해 보이는, 천상 코미디 배우다. 어린 손자를 퉁명스레 대하고 딸에게 짜증을 부리다가도 꼼짝 못하고 옹송그리는 장면이나, 드라마 ‘종합병원2’에서 사고뭉치 레지던트 1년차로 호되게 당하는 장면 등은 따뜻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여배우를 리듬감 있게 받쳐주며 돋보이게 잡아주는 흔치 않은 남자배우다. 영화 ‘연애소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파랑주의보’ 등에서도 그랬다. ‘과속 스캔들’에서도 박보영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받아주고 밀어주는 모습이 믿음직하며, ‘종합병원2’에서도 의료변호사로 고군분투하는 김정은의 여린 진지함을 잘 살려주는 특유의 무심한 듯 인간미 넘치는 호연이 인상적이다. 믿음직한 코미디 배우로 우리 곁에 오래 남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