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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최초 흑인 대통령 취임식에 미 최초 흑인 파일럿부대 초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미군 예비역 중령인 찰스 레인 주니어(83)는 내년 1월 20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에 간다.

수많은 인파 사이로 추운 날씨에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하는 것이 노구의 그에겐 부담이지만 그는 “내가 이런 순간을 직접 지켜볼 만큼 오래 살 줄은 몰랐다”는 말로 취임식에 참석하는 감동을 표현했다.

레인은 1942~46년 994명의 조종사와 1만5000명의 지상근무 요원들이 미국 앨라배마주의 터스키기 공군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았던 ‘터스키기 에어맨(Tuskegee Airmen)’의 일원이다. 다른 조종사나 군인들과 달랐던 점은 그들의 피부색이었다. 이들은 미국 최초의 흑인 파일럿 부대였다. 당시엔 흑인들의 지능이 낮고 복잡한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며 흑인 파일럿을 참전시킬 수 없다는 여론이 비등하던 시절이었다.

상·하원합동 취임식 준비위원회 측은 9일 이들을 취임식에 초대한다고 발표했다고 10일 뉴욕 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파일럿 부대원들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된 것이다.

터스키기 에어맨들은 당시 군대와 사회에 만연하던 인종 차별을 뚫고 훈련을 마친 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15만 차례 이상 유럽과 북아프리카로 출격해 연합군 폭격기를 엄호하고 수백 대의 적기를 추락시켰다. 적이었던 나치가 맹활약하던 이들을 보고 “자신들을 차별하는 조국을 위해 왜 그렇게 열심히 싸우냐”며 의아해할 정도였다. 이들의 영웅적인 참전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1948년 군에서 흑백 격리제 폐지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국가가 이들의 공로를 제대로 인정해 준 것은 참전 60년이 지난 2007년 3월에서다. 미국 의회가 시민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의회 골드메달’을 수상한 것이었다.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 당선인도 “인종차별을 없애려 싸운 이들과 같은 영웅들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정치적으로 성공하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들을 극찬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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