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低흔들리는한국수출>中.한국車 가격 메리트 줄어 미국 수출실적 저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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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달 한 부품공장의 화재로 도요타자동차 생산라인이 1주일동안 멈췄을때 더 안달했던 쪽은 미국의 딜러들이었다.뉴욕의 한 딜러는“지난 1월에만 혼자 95년 한해보다 더 많은 70대를 팔았다.이런 초호황에 웬 날벼락이냐”며 하루에도 몇차례씩 도요타 본사에 독촉전화를 걸어댔다.도요타가 1월 한달동안 미국시장에 수출한 차는 5만6천9백52대.지난해 같은달에 비하면 무려 1백32%가 늘어났다.

일본자동차공업회의 쓰지 요시부미(십義文.닛산자동차회장)회장은 지난 2월6일“엔저로 미국 자동차업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라며“수출이 아니라 일본업체의 미국 현지생산 차가 늘고 있을 뿐”이라고 딴청을 부렸다.그 직전

미국의 빅3와 전미자동차노조가“엔 약세가 심각한 국면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아우성친데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보름뒤 일본의 1월 자동차 수출통계가 나오자 쓰지 회장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전년동월비 33.9%의 수출증가,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무려 75.3%라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시장 미국에서 한국업체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엔 약세와 노동법 개정파동에 따른 파업으로 공급차질까지 겹쳐 수출실적은 급전직하다.국내 자동차업계가 지난 1월 미국에 수출한 차는 8천55대.일본과 같은 폭발적 증가세는커녕 지난해 같은달 실적 1만7천8백50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참담한 실적을 냈다.같은달 미국의 전체 자동차시장은 전년동월비 6% 성장했는데도 말이다.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산 자동차의 90%는 저가격 소형차다.대당 1만달러를 밑도는 소형차의 경우 경쟁의 관건은 가격이고 그 핵심은 환율이다.

도요타의 경우 환율이 달러당 1엔씩 오를 때마다 1백50억엔의 이익이 새로 생긴다.도요타가 올해 상정한 환율은 1달러=1백7엔.따라서 1달러=1백20엔대의 현상황이 지속된다면 도요타는 올 한해만 해도 1천9백50억엔(약 1조4천억원)을 앉아 버는 셈이다.게다가 도요타는“1달러=80엔이 돼도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체질을 강화해놓은 회사다.

이같은 추가이익은 판매 증가의 새로운 무기가 된다.

“엔화가 요즘처럼 절하되기 전 일제차의 리베이트는 판매가의 4~5% 수준이었다.그것이 지금은 거의 10%에 육박한다.”

현대자동차 한 관계자의 푸념이다.게다가 판매가 자체를 낮추거나 무료 옵션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나타난다.도요타는 인기품목인'캠리'를 지난해보다 3백30달러 낮춘 1만6천4백달러에 팔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업체들의 운신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인상요인이 생긴들 이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국내 자동차업계는 올해 수출목표를 지난해보다 11% 이상 증가(대수 기준)할 것으로 잡았다.전반적 불경기와 내수 부진이 게속됨에 따라 수출에서 활로를 찾아보겠다는 생각이었다.그러나 연초부터 실적은 목표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연초 수출감소의 가장 직접적 영향은 파업에 따른 공급차질로 봐야 한다.”자동차공업협회 한 관계자의 얘기다.결국 해답은 일본처럼 웬만한 환율변동에도 끄떡없을 정도의 체질강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쿄=이철호특파원.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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