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오바마와 한국 보수의 차이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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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편으로 힐러리 국무장관 지명에서 보듯, 선거 공신보다는 폭넓은 탕평 인사로 새 당선인은 민주당 전반의 단합을 다져가고 있다. 또한 매우 진보적인 어젠다에 치우칠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온건한 정책노선이 외교, 경제, 무역 정책의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오바마의 행보를 당선인 개인의 판단력이나 리더십의 차원에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바마 당선인이 폭넓게 인재를 등용하고 균형 잡힌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미국적 시스템에 주목해야 한다.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 같은 대표주자를 포함한 수백 개의 싱크탱크가 이러한 시스템의 주축이다. 워싱턴의 매사추세츠 애비뉴에서 의사당에 이르는 거리에 포진한 이들 싱크탱크가 바로 인재 풀과 정책 경쟁을 통해 탕평 인사와 정책 중심 정치의 기반을 제공한다. 조세나 교육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싱크탱크부터, 핵확산방지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까지 이곳에 종사하는 수천 명의 정책지식인이 정밀한 정책을 쏟아낸다.

결국 진보세력 전반을 끌어안는 오바마 당선인의 ‘열린 정치’는 이미 당선 전에 전달받은 수만 명의 정책지식인 명부와 이들이 구축해 놓은 방대한 정책 매뉴얼이 있기에 가능했다.

워싱턴의 흐름과 대조적으로 서울에서는 보수든 진보든 하나의 정치세력을 폭넓게 아우르는 시스템이 빈약하기만 하다. 10년 만에 등장한 보수정부와 그 지지층 사이에 심정적 거리는 계속 벌어져 왔다. 오랜만에 등장한 보수 정부에 적잖은 기대를 걸었던 보수 성향의 시민이나 지식인들의 태도는 지지에서 방관으로, 그리고 무관심과 거리 두기로 악화되어 가고 있다.

아마도 불만은 두 가지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이 중도보수의 지향을 폭넓게 담고 있다기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오래된 부국강병주의나 시장주의의 영향은 막강한 반면, 40∼50대에게 널리 확산돼 있는 온건보수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또 하나는 선거 공신 중심의 돌려막기 인사로는 지금의 난국을 헤쳐가는 지혜와 경험을 얻기 힘들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보수정부와 지지세력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처방은 무엇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더 넓게 인재를 등용하고, 보수세력 내의 여러 흐름을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는 주문은 이미 숱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으리라.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작 팔짱을 낀 채 이명박 정부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보수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의 문제다.

다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오랜만에 집권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한국의 보수세력은 지지 기반-이념과 정책-정치세력(정당)으로 이어지는 유기적 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채 권력에 복귀했다(이 점에서 지난 10년은 보수에게도 ‘잃어버린 10년’인 셈이다). 보수정당에 정책을 공급하는 현실감각과 비전, 그리고 독립적 마인드를 지닌 ‘공공지식인(public intellectuals)’ 집단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캠프에 참여하기보다는 보수정당이나 정치세력에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데서 존재의 보람을 찾는 지식인은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보수정당 또한 지지세력을 안정적으로 묶어줄 정책이념에 목말라하지 않는다. 정책지식은 개인적 연고와 후원관계보다 뒷전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오바마 당선인의 산뜻한 출발과 한국 보수정부가 보여주는 혼돈의 차이는 결국 시스템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지지세력-중도이념과 정책-민주당의 연결고리를 우아하게 엮어낸 것이 지난 한 달간 선보인 오바마 리더십의 요체다. 반면 1년 가까이 정체돼 있는 한국 보수정부의 곤경은 정치세력-이념-지지세력의 유기적 연결 구조를 만들지 못한 한국 보수 전반의 무능력과 관련돼 있다. 이 문제의 해법을 찾지 못하는 한 ‘이념과 지식으로부터 분리된 위태로운 권력’과 ‘권력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공허한 이념’의 불안정은 지속될 것이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