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브라운·사르코지 외교 성공 비결은 ‘스킨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8일 런던에서 만났다. ‘미니 경제 정상회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두 정상의 만남은 올 들어 열 번을 넘는다. 이 가운데 절반은 금융 위기 직후인 9월 이후였다. 8일 열린 회동 역시 불과 닷새 전에 정한 것이다. 정상 회담은 최소 몇 개월 전에 일정과 회담 내용이 조율되는데, 두 사람의 회동은 전화 한 통화로 며칠 만에 결정된다. 파격적이다.

10월 최악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나온 ‘유로존의 구제금융 합의안’은 이 같은 두 사람의 직접 소통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산물이다. 이런 직접 소통은 두 사람의 실용주의에서 비롯된다. 자존심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직접 발로 뛰는 리더십이다. 또 하나는 두 사람이 경제장관 시절부터 키워온 스킨십 덕분이기도 하다. 두 정상은 서로의 이름을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다. 그래서 사르코지는 브라운의 비서실장을 통하지 않고, 직접 자기 전화에 입력된 ‘브라운’의 번호를 누른다. 사르코지는 벌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도 서로 ‘친구’라고 부르는 사이가 됐다.

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금융위기 국면에서 영국·프랑스와 잇따라 엇박자를 내면서 철저하게 소외됐다. 국내에서도 위기 대처 속도가 너무 늦고 방법도 지나치게 미온적이어서 점수를 크게 잃었다. 심지어 유럽의 리더 자리를 스스로 버렸다는 말까지 듣는다. 구제금융 거부, 경기부양책 거부 등 유럽 최고 경제대국 독일이 지나치게 자국 이익에만 집착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한 언론은 “메르켈의 전임자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2002년 대홍수 때 독일식 장화를 신고 피해 지역을 매일 누비면서 지시했는데, 메르켈은 위기에서도 장화를 신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메르켈은 사르코지·브라운의 해법에 사사건건 뒷다리를 걸고 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메르켈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아무리 브라운과 ‘찰떡 궁합’이라 해도 유럽 최대 부자인 독일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르코지는 최근 메르켈을 파리로 모셔왔다. 그러곤 엘리제궁이 아닌 파리 시내에 있는 자신과 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신혼집으로 초대했다. 외국 정상을 사저에 초청하기는 처음이었다. 마음을 툭 터놓고 얘기하자는 취지였다. 오붓하게 저녁 식사를 하면서 메르켈의 섭섭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프랑스의 한 정치평론가는 “정상회담 패러다임이 자존심과 격식을 중시하는 시대에서 실용을 강조하고 정상 간 소통을 중요시하는 시대로 전환됐다”고 평가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