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본 지주회사 허용 배경과 문제점-국제경쟁시대 불가피한 선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도쿄=이철호 특파원]“독점금지법이 일본경제발전에 미친 역할은 높게 평가한다.그러나 기업경영의 다각화와 다양화는 국제경쟁시대에 필수적이므로 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연립여당의 합의안 제1항은 지주회사 허용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다.또 이번 조치는 구미 각국과 똑같이 경쟁하기 위한 규제완화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 허용에 대한 26일 일본기업들의 반응은 두가지로 갈렸다.게이단렌(經團連)과 금융기관.종합상사.유통업계.NTT는 즉각적인 환영의사를 표시했다.반면 제조업체들은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개정의 주역인 자민당의 야마사키 다쿠(山崎拓)정조회장은 이에 대해“기대이상의 반응”이라고 말했다.지주회사 허용은 사실상 일본경제의 고민인 금융재편,NTT분할,유통개혁에다 목표를 맞춰왔기 때문이다.야마사키는 해금시기도 내년 1월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그만큼 지주회사의 이점은 크다.우선 복수의 기업이 수평적으로 통합할 수 있어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지주회사가 허용되면 경영환경이 전혀 다른 회사들도 한 우산안에 모일 수 있어 기업 인수.합병(M&A)이 훨씬 쉬

워진다.

산하기업들의 자율성 향상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이나하 코사쿠(稻葉興作) 일상회(日商會)회장은“지주회사는 위험부담이 높은 신규분야와 벤처사업에 더 쉽게 진출할 수 있고 분사화(分社化)도 촉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에서 지주회사 허용논쟁은 70년대 이후 줄곧 계속돼 왔다.게이단렌은“압도적인 거대자본인 구미기업에 대항하기 위해 인수.합병에 의한 자본집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반면 사민당과 노조는“경제력 집중은 되도록 억제돼야하고

구(舊)재벌 부활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일본공정거래위원회는“지주회사의 허용이 곧 구 재벌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6대 재벌의 경우 최하위인 스미토모(住友)도 총자산이 20조엔을 넘어 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되지 않는다.개정안은 총자산 15조엔을 넘을 경?공정거래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또 대형 금융기관끼리의 인수.합병도 금지돼 구 재벌처럼 은행을 끼고 계열사를 마음대로 주물러온 관행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없다.

하지만 지주회사가 허용돼도 세금과 노동관계의 문제는 여전히 불씨로 남을 전망이다.일본기업들은 지주회사 허용과 함께 연결납세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적자를 내거나 흑자를 내는 자회사와 계열회사를 모두 합쳐 하나의 기업처럼 과세해

달라는 것이다.그러나 대장성은 현재의 개별기업 신고과세보다 세수가 줄어들게 뻔해 연결납세에는 반대하고 있다.

또 노조 대표격인 렌고(連合)는 지주회사와의 노사협상권을 요구하고 있다.구미처럼 자회사가 엄격한 경영독립권을 갖지 않는 이상 핵심문제는 최종 경영권을 가진 지주회사와의 직접 담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