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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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용태와 우풍이 고물장수의 리어카를 뒤집어엎고는 도망을 쳐 달아났다.리어카에 얹혀 있던 빈병과 신문지들이 굴러떨어지고 튀밥자루가 바닥으로 미끄러져 허연 튀밥들이 눈싸라기처럼 골목을 덮었다.

용태와 우풍은 동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막바로 다리를 건너 비트로 돌아가지 않고 초등학교 담 쪽으로 방향을 꺾어 달리다가 허름한 다방이 나타나자 거기로 들어가 한숨을 돌렸다.

“고물장수가 파출소에 신고를 하면 어떡하지? 그렇게까지 싸울 필요는 없었잖아.슬쩍 따돌리면 될 걸 가지고.”

우풍이 구석진 의자에 앉으면서 약간 불평이 섞인 어조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네 말대로 성질을 죽이고 그랬어야 하는데.그 새끼가 자꾸만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아래 위를 훑잖아.기분 나쁘게.어차피 주인이 돌아와도 파출소에 신고를 하게 될 거야.현관문 자물쇠가 뜯겨 있으니 말이야.”

용태가,에라 모르겠다,하는 태도로 다리를 앞으로 쭉 뻗으며 깍지 낀 두 손으로 뒤통수를 받치면서 머리를 한껏 젖혔다.다방안은 아침이라 손님들이 저쪽에 두어명밖에 없었다.그 손님들은 다방 레지와 수작을 부리느라고 용태와 우풍 쪽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다방 레지 하나가 손님의 음흉한 손길을 애교스럽게 뿌리치고는 엽차 두 잔을 들고 용태와 우풍에게로 다가왔다.

“차는 뭘로 할까요오?”

스무살이 조금 넘었을까 말까 한 다방 레지가 의외로 어린 손님들이 귀엽게 여겨지는지 말을 장난스럽게 길게 끌면서 혀끝으로 입 속의 껌을 안쪽으로 살짝 말아넣었다.

“손님들이 더 오는데….”

용태가 말끝을 흐리자 레지는 엽차만 놓아두고 조금 전에 자기에게 수작을 부리던 손님에게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훔친 물건이 없으니 파출소에 신고해 봤자지 뭐.”

“하긴 그래.파출소에서도 고물장수 때문에 좀도둑들이 들어왔다가 그냥 달아나버린 것으로 처리하겠지.아무 일도 없을 거야.근데 정말 너,아무 것도 훔치지 않았어?”

용태가,훔친 것 있으면 신고하라는 투로 우풍을 넌지시 건너다보았다.

“전화 값 한 삼사만원 훔친 것 외에는…아참,이거 하나 훔쳤다.”

우풍이 비시시 웃음을 흘리며 바지 호주머니에서 크리넥스 화장지를 꺼내어 다탁에 놓았다.

“뭐야? 똥 닦는 휴지잖아,이걸 왜 가지고 와.”

“여기 봐.예쁜 입술이 찍혀 있잖아.빨갛게 정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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